지난 기간 우리의 대북정책은 크게 두 가지 가정(假定) 위에 서 있었다.

하나는 북한이 정상국가가 될 수 있다는 가정이다. 다른 하나는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 있다는 가정이다.

우리는 북한이 언젠가는 개혁개방을 하여 정상국가가 될 수 있다는 가정 위에서 남북대화와 교류 및 협력을 하여왔다. 그래서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이 등장하게 되었다. 또한 우리는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 있다는 가정 위에서 북핵 포기를 위한 다자회담(6자회담)과 양자회담을 수없이 해왔다.

그래서 1994년의 제네바 합의도 있었고 2005년 9·19공동성명도 만들어냈다. 그런데 이 모든 그동안의 성과가 다 물거품이 되고 있다. 금강산관광도 이미 오래전에 문을 닫고 개성공단도 마찬가지 운명이 되고 있다.

경제적 이득, 즉 달러벌이가 된다면 유지하다가도 정치적 부담이 되면 언제든지 문을 닫는다. 제네바 합의도 2005년 9·19성명도 모두 휴지조각이 되어버렸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생각하건대 그동안 대북정책의 기본 가정이 크게 잘못되었는지도 모른다.

과연 북한은 개혁개방을 할 수 있는가? 남한과 국제사회가 노력하여 개혁과 개방에 유리한 외적 환경을 만들어주면 북한은 과연 개혁개방을 할 수 있는가?

또한 남한과 국제사회가 노력하여 북에 큰 이익을 보장한다면 과연 북한은 핵을 포기할 수 있는가? 이 두 가지 근본 문제에 대하여 검토해보자.

1. 북한은 과연 개혁 개방을 할 수 있는가?

북한도 개혁개방을 생각한 때가 있었다고 한다. 1982년 9월 김일성이 덩샤오핑과 함께 쓰촨성을 방문했을 때 농가마다 가득한 알곡을 보고 감동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 이유를 덩샤오핑에게 묻고 가정생산도급제(농업생산물의 일부를 정부에 바치고 나머지는 농민들이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는 제도)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개혁에 관심을 두었다.

그러나 1989년 6월의 천안문사건을 보고, 그리고 1990년 동유럽과 소련의 붕괴를 보고 경악을 하면서 개혁은 체제전복을 결과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개혁개방에 극히 부정적이 되었다고 한다. 북한은ㅡ보다 구체적으로는 현재의 집권세력은ㅡ과연 개혁개방을 할 수 있는가?　

이 문제에 대하여는 앞에서도 잠깐 살펴보았지만, 우리는 북한이 다음과 같은 이유로 개혁개방이　결코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첫째, 개혁사상이 등장해야 한다.

적어도 지금의 수령절대주의에 대한 심각한 수정이 있어야 한다. 예컨대 중국의 경우에는 ‘사회주의적 시장경제’라는 개혁사상이 들어와, 마오쩌둥의 이상주의 노선을 덩샤오핑의 현실주의 노선으로 대체하였다. 개혁 개방은 사실 새로운 이념과 사상의 등장을 의미한다. 그래서 사상과 이념 변화 없이 개혁개방은 어렵다.

황장엽은 북은 수령 절대주의인데 이것이 유지되는 한 개혁개방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왜냐면 개혁개방은 곧 수령 절대주의의 몰락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전체주의적 개인독재와 민주주의는 양립할 수 없다. 따라서 개혁개방과 수령 절대주의는 양립할 수 없다. 개혁개방은 곧 수령절대주의체제의 붕괴를 의미한다. 북한의 수령절대주의체제를 그대로 두고 개혁개방을 한다는 것은 하나의 기만에 불과하다(황장엽, 「북한의 진실과 허위」, 시대정신, 2006.),”

올바른 지적이다. 사실은 개혁개방 과정에서 개혁보다 개방이 더 어려운 문제가 된다. 개혁은 내부 문제이나 개방은 외부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개혁은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으나 개방은 통제가 쉽지 않다. 그런데 개혁이 성공하려면 반드시 개방까지 이루어져야 한다. 예컨대 시장개혁이 성공하려면 대의개방까지 가서 외국에서 자본과 기술 그리고 중간재들이 자유롭게 들어올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북한에서 만든 혹은 조립한 최종 생산물이 자유롭게 밖으로 나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경제가 발전한다.

그런데 이러한 경제적 개방은 정치적·정보적 쇄국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수령절대주의와 양립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더구나 김정일 이후 선군정치를 앞세워 핵을 개발하고 대외적으로 대단히 호전적·공격적 자세를 취하여왔기 때문에 개방은 더더욱 어렵게 된다. 핵개발과 선군정치는 반(反)평화적 군사 노선인데 어떻게 평화적 경제개방 노선과 양립할 수 있겠는가?

세계의 어느 누구가 핵을 들고 흔드는 예측하기 어려운 비정상 국가와 자유무역과 자유통상을 하려 하겠는가? 아니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는가?

그래서 수령절대주의와 핵개발의 선군정치가 존재하는 한 개방은 어렵고, 개방이 어려우면 개혁의 성공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국내 시장개혁을 위한 몇 가지 유사개혁 논의나 조치ㅡ예컨대 앞에서 본 가정생산도급제ㅡ마저도 제대로 허용되지 않는 상황에서 개방의 본격화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북에서의 개혁개방에는 한계가 있고 경제발전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북한이 수령절대주의와 핵개발의 선군정치 노선 자체를 바꿀 수는 없는가? 할 수만 있으면 북한 동포는 물론 한반도 전체에 큰 축복이다. 황장엽도 앞의 책에서 “북한의 살길은 개혁개방밖에 없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명백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개혁개방이 안 되는 이유를 “국가와 인민의 운명보다 수령 개인의 운명에 대하여 더 걱정하기 때문이다”라고 보고 있다. 그렇다. 북한의 개혁개방을 확실하게 막고 있는 것이 북한의 세습독재체제이다.

다른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당의 최고기구 내에서 다양한 주장이나 노선의 수렴 과정이 있다. 상호비판도 있고 새로운 주장도 있을 수 있다. 중국 공산당도 소련의 공산당(스탈린시대는 예외)도 그러했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에는 수령 절대주의이면서도 세습형이기 때문에ㅡ심지어는 유훈통치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ㅡ과거 지도자의 노선에 대한 비판 자체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새로운 개혁사상, 특히 수령절대주의나 선군사상을 수정하는 사상이 나올 가능성이 거의 없다. 솔직히 비극적이다.

둘째, 기득권 세력이 약화되고 개혁 세력이 등장해야 한다. 중국에서는 문화대혁명을 통하여 중국 공산주의의 기득권 세력이 크게 약화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새로운 개혁과 개방에 대한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 적었고 실용주의 세력이 등장할 수 있었다고 한다.

북한의 경우는 단순한 공산독재가 아니라 세습·독재이다, 그래서 최고 지도자는 물론이고 집권 세력 전체의 기득권이 대대로 세습되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북한의 기득권 세력이 약화되거나 대체되기가 쉽지 않다.

이미 공고화된 세습형 기득권 세력은 지금의 체제 속에서 만족하고 있으므로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진 않는다. 비록 느낀다 하여도 개혁개방이라는 자신들의 권력 기반을 위험하게 하는 시도는 극렬하게 피하려 한다.

셋째, 남한이 존재하기 때문에 개혁개방이 더 어렵다.

우선 남한의 자유롭고 풍요로운 사회를 북한주민이 더 많이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사실은 체제 유지가 어려워질 수 있다. 국민대학의 란코푸 교수는 풍요로운 남한의 존재 때문에 북한의 개혁개방이 더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다(Andrei Lankov, 「북한의 워크아웃」, 시대정신, 2009).

그러나 이러한 개혁개방 문제를 좀 더 근본적으로 들여다보면 북한에는 아마 다음과 같은 딜레마가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북한은 “우리 식으로 산다”는 소위 우리식 사회주의를 표방하면서 주민을 지도하고 통제해왔다. 그래서 남한이 비록 경제적으로 잘산다 하여도 그것은 미제의 앞잡이로 살기 때문이라고 비웃어왔다.

그런데 북한이 이제부터 개혁개방으로 나간다면, 지금까지의 “우리 식으로 산다”는 북한의 정체성과 자부심의 원천 자체가 흔들리게 된다. 남한과 똑같이 세계 시장경제 속에서 실용주의 노선을 선택한다면, 지금까지 교조주의적으로 살던 북한의 존재 이유를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까지 ”우리 식으로 산다“는 자부심을 품고 고난의 행군을 참아온 북한주민에게 지금까지의 고통의 의미와 가치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누가 그들의 과거의 고통과 고난을 보상하여야 하는가? 솔직히 북한은 시대착오적이고 시대역행적 존재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순적 존재이다.

그래서 자기변화가 참 어렵다고 보아야 한다. 물론 남한이 존재하기 때문에 북한의 개혁개방이 어렵다고 보는 것은 북한의 지금의 권력자들, 즉 김씨 세습정권의 입장에서 하는 말이다.

만일 북한에 개혁개방 세력이 등장하면 남한의 존재가 그야말로 북한에는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지난 기간 남한이 이룩한 산업화와 민주화 그리고 세계화 및 선진화의 성과와 경험이 그대로 북한의 발전에 투입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심으로 도와줄 수 있는, 또 그러한 능력을 갖춘 동족이 바로 옆에 있으니 그것이 큰 축복이 아니고 무엇인가?

만일 이상과 같은 북한 내부의 구조적 이유 때문에 북한의 개혁·개방이 대단히 어렵다면ㅡ사실상 불가능하다면ㅡ지금까지 남한의 대북정책은 도대체 어떠한 의미를 갖는 것인가?

그동안 교류협력을 주장하면서 막연히 “언젠가는 개혁개방으로 가지 않겠는가?” 하고 기대하여온 대북 유화론은 얼마나 허망한 주장이 되어버리는가?

마찬가지로 북한과의 대화를 단절하고 부당한 요구를 무시하면서 기다리자던 대북 압박론도 북한의 개혁개방을 가져오지 못하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기다려왔다는 말인가?

류 근 찬

‘통일이 답이다’ 국민운동본부 상임고문

제 17대, 18대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