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은 말로만 하는 게 아니다.

힘이 없는 통일 구호는 헛구호에 다름 아니다.

준비한(된) 자 꿈을 이룬다는 말이 있다. 우리의 통일도 준비돼 있어야만 그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통일은 통일에 대한 원대한 국가목표가 설정되고 정부가 바뀌어도 일관성있게 밀고 나가면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베트남이나 예멘 그리고 독일 등의 통일 교훈과 그 과정을 연구해보면 쉽게 그 답을 찾을 수가 있다. 그 답이란 부국강병, 나라가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강한 군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1990년 10월 3일에 통일된 독일의 경우를 보자.

동서독 통일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동독 주민들은 무혈, 평화 혁명을 선택했고 동독의 공산체제가 와해됨으로써 통일을 이뤘다. 동독의 인민회의는 서독 기본법 23조(동독 5주가 서독의 각주로 편입돼 기본법의 효력을 당장 적용받았다)에 따른 조건 없는 통일 방식을 결정했다.(1990.8,23)

그래서 독일 통일은 동독의 자발적 의사에 따른 흡수통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독일 통일은 서독의 우세한 경제력, 독일국민들의 단결력, 그리고 미국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이뤄졌다고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은다. 한 가지를 덧붙인다면 소련의 고르바초프 공산당 서기장과 외무장관이 셰바르드나제(후에 소련 연방 붕괴 후 독립한 그루지야(조지아) 공화국 대통령을 지냄)의 말을 빌어 소련의 동독 포기가 독일 통일의 결정적 요인임을 강조하고 싶다.

소련 공산당 서기장 고르바초프는 독일이 통일되기 일 년 전인 1989년 10월 7일 동독을 방문해 개혁과 개방을 촉구하고 나섰다.

“서독 없이는 동독을 살릴 방법이 없다”면서 사실상 동독을 포기하는 발언을 했다. 한술 더 떠 셰바르드나제 외무상은 “차라리 우리가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자”라고 했다.

소련 지도부가 이처럼 동독을 포기한 이면에는 경제적으로 동독이 서독을 이길 수 없고 군사력으로도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있는 서독에 눌리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통일 이후 서독은 흡수 통일에서 있을 수 있는 동독에 대한 어떠한 차별이나 보복을 하지 않았다. 동서독은 대등하며 포용적인 통일을 이뤘다는 점에서 독일 통일을 합류통일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그러면 한반도 통일은 어떤 방식이 바람직한가.

기존의 우리의 통일론은 모두가 심각한 내재적 결함을 가지고 있다.

남한에 살면서 북한을 극단적으로 증오하는 사람들은 전쟁을 통해서 한반도 통일을 달성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무력통일론은 압도적 파괴력을 지닌 전쟁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통일이라는 목적 그 자체까지 파괴해 버리는 지극히 ‘비현실적’인 방안이다.

따라서 무력통일론은 북한에 대한 극단적 증오심을 끊임없이 충족시켜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책임질 수 없는 자기 파괴적, 자기 부정적, 최면적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다.

대한민국 주도의 무혈 평화통일과 합류통일이 바람직하다 할 수 있다.

그러나 독일의 흡수통일은 한민족 통일 모델로는 부적합하다는 전문가들이 있다. 그 이유를 들어보면 통일전의 동서독 관계가 지금의 남북한 관계와는 역사적,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 측면 등에서 현격한 차이가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따라서 독일통일과 똑같은 과정과 방식을 기대하는 것은 낭만적일 수 있다.

그렇게 되려면 북한 주민 저항에 의해 북한 체제가 스스로 와해돼야 한다. 그러나 북한 주민은 혹독한 억압과 굶주림에 지쳐있어 1989년 12월 군중들이 사회주의 독재자 차우셰스쿠 정권을 뒤엎은 루마니아 혁명과 같은 폭발적인 저항에너지의 분출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하지만 북한 안에서 시장은 확대되고 주민들에게 외부세계의 정보는 하루가 다르게 확산되고 있다.

여기에 장성택 처형이후 북한체제의 균형이 요동치기 시작하면서 언제 뒤틀릴지 모르는 상황인 것으로 보인다. 어떤 형태로든 북한내부에서 본질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필연이다.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저명한 북미관계전문가인 조지아대학 박한식 명예교수는 기존의 통일론이 지닌 결함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변증법적 통일론’을 제안하기도 한다.

이 변증법적 통일론은 가장 우선적으로 남북한 간의 현격한 ‘이질성’을 현실적으로 인정하고, 그럼에도, 더 나아가서는 동질성이 있기 때문에 남과 북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한민족 특유의 통일방안이라는 것이다.

남과 북이 서로의 이질성을 이해하고, 현실적으로 인정하며, 이를 평화적으로 조화시키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더 높은 차원의 동질성, 즉 새로운 합에 도달할 때 비로소 통일의 지평이 자연스럽게 열리게 될 것이란 것이다.

한반도 통일은 한국의 주도로, 독일 패턴처럼 정반합의 역사적 발전과정을 거쳐 이루질 것이라는 논리이다.

서독이 이끌었던 독일통일에 비추어 한반도통일 역시 국력의 절대우위를 점하고 있는 한국 주도로 이루어질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독일통일은 역사적 변증법에 따라 정반합으로 발전되는 오랜 과정의 산물이다. 서독의 아데나워 수상은 친 서방 정책과 힘의 우위 정책으로 엄청난 국력차를 보이며 동독을 압도했다(正).

브란트 수상은 압도적인 국력을 바탕으로 동독을 포용하는 동방정책을 추진했다. 동서독 기본조약을 체결하고 양 독 간의 교류 협력을 강화하며 민족이질감을 줄여나갔다(反).

헬무트 콜 수상은 양 독 간 교류를 강화하며, 민족 이질감을 줄여 나갔다(合).

결국 독일 통일은 ‘국력신장’과 ‘교류협력’의 합이 곧 통일이라는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

통일은 어느 한순간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다. 시대적 상황에 따라 필요충분한 여건들이 꾸준히 성숙되고 결정적인 기회가 왔을 때 비로소 이루어지는 긴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통일정책 핵심과제는 1)국내적으로 평화통일기반을 조성하고 2)남북 간 군사적 긴장완화와 북한의 대량 살상무기 개발을 포기시키면서 3)남북화해 협력을 확대시키고 제도화함으로써 장차 남북 정치, 경제 공동체의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공짜란 없다.

자유도 그렇고 통일 또한 공짜가 아니다.

통일은 우리가 만들어 가야 한다. 공들여 준비할 때 기회를 잡을 수 있듯이 우리의 염원인 통일을 달성할 수가 있다.

류근찬

통일이 답이다 국민운동본부 상임고문

제17, 18대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