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경지역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하는 내용의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남북관계 발전 법 개정안)이 지난 14일 국회본회의를 통과했고 국무회의를 거쳐 대통령 재가‧공포‧시행 과정을 남겨두고 있다.

핵심 골자는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이나 전단 살포 행위를 전면 금지하고 위반했을 경우 처벌조항도 규정하고 있다.

여권은 120만 주민의 삶과 안전을 보장하려는 최소한의 조치라고 강변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박약한 인식이라는 평가 외에도 논리가 조잡하고 허약하다고 평가한다.

지금까지 대북전단을 통해 북한주민들에게 많은 정보가 제공됐는데 이런 입법은 국내외의 많은 난관으로 교각살우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남북관계 발전 법 개정안은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전단 살포 행위, 대북 확성기 방송 등 남북합의를 위반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 원이하 벌금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한 내용이다.

27개의 북 인권단체가 ‘과도한 통제’라며 곧바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자국민이 외부의 힘(북한)으로부터 위협을 받는다면 이를 보호할 책임은 국가에 있는 것 아닌가.

이 법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전단 살포가 정당하다거나 막지 말라는 게 아니라, 법을 만들어 처벌하는 것이 무리라는 것이다. 어렵더라도 금지법이 아닌 다른 수단으로 막으라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이른바 ‘김여정 하명법’이라며 격하게 반대했다.

‘국민의힘’은 전날(12월 13일) 오후 8시50분쯤 이 법안을 두고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에 돌입했으나 민주당이 주도한 강제 종료 표결로 하루 만에 끝났다.

이 법은 결국 거여의 밀어붙이기로 국회를 통과했고 국무회의까지 통과해 공포‧시행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 법이 나오게 된 계기와 과정을 보면 김여정이 지난해 6월 4일 담화에서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거칠게 비난하면서 이를 “저지할 법이라도 만들라”고 엄포를 놓은데 이어 6월 16일에는 개성공단에 있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함으로써 정부를 압박하자 청와대가 대북전단 살포는 ‘백해무익’이라고 했고 통일부와 국방부가 잇따라 대북전단 살포 중지를 촉구하고 나서 논란을 빚었다.

북한노동당 김여정 제1부부장의 ‘압박과 경고’에 따라 송영길 국회외통위원장이 2주 만인 6월 30일 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대표 발의한 법안이기 때문에

‘김여정 하명법’이라는 별명까지 붙어있다.

이른바 삐라가 백해무익(百害無益)이라고? 아니다 무해백익(無害百益)이 맞다. 김정은에게 치명적인 두려움을 주는 효과가 있다.

독재자의 실상을 알리고 북한주민의 인권을 위한 전단 살포 행위는 대한민국이 아니고 북한의 안보를 위협하는 것이다.

얼마 전 서울에서 발행되는 모 조간신문에 고 김대중 대통령 정부시절 ‘대북책사’였던 라종일 가천대 석좌교수가 여권의 대북전단금지법 강행처리를 비판한 기사를 본 일이 있다.

그는 “북한은 DJ‧노무현 정부 때도 휴전선의 대북전광판 철거를 집요하게 요구했다”면서 “정보와 지적결핍에 빠진 북한주민들을 위해서라도 전광판 같은 최소한의 정보유입요구는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어디 전광판뿐이겠는가? 당연히 전단도 포함돼야 할 것이다.

이 법은 국내적으로 인도주의적 인권활동을 범법행위화하고 ‘전단 살포’ 규정도 광범위하다.

국제 인권법에 따르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려면 개인이 행위를 조정할 수 있도록 명확한 규정을 대중이 인식할 수 있어야 하고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이들에게 재량이 주어지면 안 된다.

따라서 반 인권적 특성과 표현의 자유 침해라는 비판과 같은 반 헌법적 문제로 위헌소송 등 법질서의 혼란이 예상된다.

전단 살포가 부작용이 있고 효율성 때문에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 북한과 대화도 필요하고 여건이 허락하면 교류협력도 해야 하는 건 맞지만 오직 북한의 비위를 맞춰서 대화와 교류협력을 하는 대북정책은 재고돼야 한다.

우리의 목표는 통일이다. 지금 남북한의 통일을 가로막고 있는 가장 큰 암초는 북한의 개혁과 개방이 불가능하다는 점과 핵개발이다.

지금 상황은 북한의 개혁개방도 핵 폐기도 거의 불가능하다.

이 두 가지 문제를 한꺼번에 풀 수 있는 방법에 대한 해답은 북한의 정상국가화이다.

북한의 비정상성을 이대로 두고는 개혁개방문제도 핵문제도 풀 수 없다.

북한의 민초들과 엘리트들이 김정은 체제에 대한 진실을 알고 외부세계에 대한 지식이 늘어날수록 변화에 대한 욕구는 충족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지독한 폭압체제도 아래서 올라오는 변화압력을 무한정 버틸 수는 없는 법이다.

북한주민들이 외부정보에 접근하는 길을 차단하는 것은 2500만 동족을 세계최악의 폭압체제하에서 노예처럼 영원히 살아가라고 저주하는 잔인한 짓이 된다. 외부세계의 정보가 가득한 전단이라도 북한 땅 구석구석까지 파고 들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 길이 북한의 정상국가화의 지름길이다. 대화와 협력은 북한의 한반도 평화 파괴능력을 제거하고 북한사회와 체제의 긍정적 변화를 촉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김정은 체제의 사상적 속박과 노예상태에서 북한 동포들을 해방시켜 그들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고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찾아주는 것은 민족적 양심의 문제이고 포기할 수 없는 목표다.

통일이 이를 실현할 궁극적 방법이지만 이전 단계에서 북한 내에 변화의 동력을 만들어낼 핵심적 수단이 바로 외부 정보유입이다. 북한으로 외부 정보가 유입 되는 것은 김정은이 경기를 일으킬 정도의 심리전 위력일 것이다.

우리 군이 사용할 리가 없지만 선제적 무력도발을 제외한다면 북한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해온 것이 이른바 대북심리전이다.

3대 세습을 넘어 김 씨 왕조의 영구집권을 꿈꾸는 체제의 특성 탓에 김정은은 전근대적인 수단으로 보이는 대북확성기방송이나 전광판, 그리고 전단지살포를 심대한 위협으로 보는 것이다.

북한이 보유한 최대의 대남 비대칭전력이 핵과 탄도 미사일이라면, 우리가 갖고 있는 비대칭수단중 하나가 ‘심리전’이라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이미 체제 경쟁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무의미한 상황이란 말이다.

17세기 유럽에서 베스트팔렌(Westfalen)조약으로 근대 주권국가체계가 형성된 이래 국가 주권은 절대적인 것이었고 아무도 다른 나라의 국내문제에 개입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후 국내 문제 불간섭에 대한 단하나의 예외가 생성 됐다. 그것이 국제적으로 공인돼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바로 인권문제다.

인권문제는 국경을 초월하는 인류보편적 현안으로서, 유엔은 물론 여러 인권협약에 의해 국제사회의 개입이 허용된다.

인권문제에 관한 한, 국가는 국내문제 불간섭을 원용해 다른 나라나 국제기구의 개입을 거부할 수 없다. 중국이나 북한처럼 인권문제가 심각한 나라들은 다른 나라의 개입을 허용하지 않는다.

한국도 과거 군사정권시절에는 ‘한반도 안보특수성’을 내세워 인권제한을 합리화하면서 국제사회의 인권문제개입에 저항했다.

1990년대 초 소련과 동유럽공산국가들이 몰락한 이면에는 인권문제가 핵심요인으로 자리하고 있다. 1975년 동서 양진영 35개국사이에 체결된 헬싱키협정에 따라 서유럽국가들은 점차 동유럽공산권의 인권문제를 공식제기하고 시정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런 헬싱키체제가 소련진영 체제붕괴의 직접적 원인 중의 하나가 됐고 동서독의 통일도 서독정부가 경제지원의 대가로 동독 측에 인권개선을 강력히 요구해 관철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보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중시하는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는 시점에 등장한 대북전단금지법 논란은 한국의 국가정체성과도 직결된 사안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 제기되는 비판은 두 가지다.

첫째는 북한주민들에게 북한 실상과 외부세계정보를 알리는 수단인 전단과 확성기 등을 모두 금지함으로써 북한 주민의 인권개선을 위한 국제적 대의에 역행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이런 활동을 범죄로 간주해 처벌함으로써 한국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 민주주의에 역행한다는 것이다.

북한주민이 한국은 물론 세계의 소식을 접할 수 있다면 북한당국도 개혁개방의 길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북한을 평화롭게 변화시킬 좋은 방법이다.

북한당국이 정보개방을 거부하는 전단은 현실적인 통로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대북 전단에 대해 ‘삐라’라고 비하하면서 ‘백해무익한 행동’이라 했다.

전단은 백해무익이 아니라 북한주민에게 외부세계 움직임을 전할 수 있는 가장 유효한 수단이다.

정보통제는 세계최악의 북한 독재체제를 지탱하는 수단이다.

전문가들은 “이 법의 제정은 대한민국 역사에 씻을 수없는 오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민주국가가 지켜야 할 가장 소중한 가치를 포기하고 문명국가이기를 거부하는 법이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우리가 김정은의 폭정에 시달리는 북한 동포들을 그대로 버려서야 되겠는가.

류근찬

통일이 답이다국민운동본부 상임고문

제17,18대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