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일본을 점령한 미국이 초안을 마련한 현행 일본 헌법 제9조는 흔히 ‘평화 조항’이라고 불린다. 9조 1항은 ‘평화주의’를 표방하고 ‘무력행사에 의한 국제분쟁의 해결을 포기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2항은 ‘육해공군의 전력을 보유하지 않으며, 교전 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이를 엄밀히 해석하면 일본이 군대인 자위대를 보유하는 것 자체가 사실상 헌법 위반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헌법 해석을 고쳐가며 헌법 조항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메워왔다. 현재 일본 정부는 9조 1항이 ‘독립국가 고유의 자위권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고 해석하고 있고, 2항에 대해서도 ‘자위를 위해 필요최소한의 실력을 보유하는 것까지 금지한 것은 아니다’고 해석한다. 일본 대법원 판례도 같은 맥락이었다.

 

 그러던 차에 1997년 미-일간에 일본의 군사적 역할에 대한 새로운 가이드라인이 나왔다. 가이드라인의 주된 내용은 한반도 유사시에 일본이 공해상에서 자위대를 참여시킬 수 있다는 것.

 

일본 방위 가이드라인의 존재는 전후 한반도 분단에 책임이 있는 미국이 일본의 재무장을 원한다는 방증인 셈. 이후 미국은 동북아의 패권 경쟁에서 주도권을 중국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 다각도로 방법을 모색해왔다. 이는 중국이 자유시장주의 정책을 펼치며 막강한 국력을 축적하고 동북아에서 아시아의 맹주로 존재감을 과시해온 데 따른 것이다.

 

더우기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와 남사 군도, 독도 등 일본이 야기하고 있는 영토분쟁이 맞물린 2010년 이후 동북아는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이 팽팽하게 대치 중이다.

 

 지난 6월에 한-일 군사정보 보호협정 체결을 코 앞에 두고 한국에서 약속을 어기는 희대의 사건이 벌어졌다. 일각에서는 이 일을 일컬어 ‘외교참사’라고까지 말한다. 그런데 이에 대응하는 한국과 일본의 온도차가 극명했다.

 

 한국의 경우 이 사건은 연일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밀실외교가 실패하자 이명박 대통령은 국회 논의를 제의하고서는 정작 책임자인 본인은 뒷전으로 빠졌다.

 

 청와대와 외교부가 서로 책임공방에 열을 올리는 등 국가 전체가 심각한 분열 양상을 보인 반면, 외교각서 서명을 불과 1시간 남겨놓고 협정 체결을 무기한 연장한다는 통보를 받은 일본 정부는 간단한 보도 자료만 냈을 뿐, 이에 대한 아무런 논평을 내놓지 않았다.

 

일본의 우익성향 매체인 요미우리를 비롯한 보수언론 매체들 또한 '무기한 연장 한국 측 통보'라는 기사 몇 줄로 마무리했다. 사설 논평 이슈 등 이와 관련한 자료를 샅샅이 찾았건만 별다른 기사를 발견하지 못했다.

 

 일본은 한국에서 창씨개명을 주도하며 말과 이름까지 없애려 했던 '식민통치 잔혹사'를 저질러 놓고 진정성 있는 사과와 해결책은 내놓지 않고, 지리멸렬한 역사왜곡 교과서 발행, 독도 영유권 주장 등을 반복하고 있다. 한-일 갈등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

 

  일본은 북한의 경우 식민통치 보상을 전혀 하지 않았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는 일본 내 모든 언론이 지난 20여 년간 일관되게 이를 규탄하는 기사를 게재해왔으며 일본과 북한은 여전히 국교단절 중이다.

 

이런 와중에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의도대로 한-일 군사정보보호 협정을 체결하려다 불발된로 끝난

 

 한-일 군사정보보호 협정은 일본의 입장에서는 외교상 빅딜이나 아무런 대가도 치루지 않고 복이 넝쿨째 굴러 들어올 판이었다. 국민적 동의 없이 비밀리에 협정을 체결하려다 불발된 것은 한국으로서는 국민정서상 당연한 결과이겟으나 국제적으로는 한국 외교의 철학과 문제점이 노출된 사건이다. 

 

게다가 지난 6월 29일 일본 겐바 외상은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기존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그는 “차분하게 확실한 대책을 강구해 나가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날 오후 4시 그는 신각수 주일 한국대사와 정보보호협정 서명식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한국과 군사협력을 추진하더라도 독도 영유권 문제는 결코 양보하지 않겠다는 일본 정부의 속내를 재확인시킨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북한의 핵개발 위협은 일본이 군사적으로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명분을 얻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한국의 종일(從日)파와 연대하여 강압적인 대북정책을 통해 북한을 핍박 하면서, 남-북 분단을 더욱 고착시키는 게 그들의 속셈인 것이다.

 

 일본은 주변 중국․러시아 간 영토분쟁, 한국와의 독도분쟁, 북한 핵 무장에 대한 자위권 분담 등을 통해 과거 제국주의로의 회귀를 시도하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은 일본에게 위협이자 기회이다. 미국은 일본의 재무장을 용인함과 동시에 원자력 발전소의 사용이 끝난 핵연료를 재처리해 사용하는 '핵연료 사이클' 정책에 대해서도 권한을 주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일본은 내각의 원자력 규제 위원회 설치 법안을 중의원에서 통과시켰다. 바로 북한 핵개발의 대가다.

 

일본은 자위대를 국제적으로 군대로 인정 받기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유사시 해외 파병을 시행 결정에는 그 모든 속셈이 내포되어 있다.

 

 일본은 한반도 군사력을 견제하고 있다. 남북의 재래식 군대와 북한의 핵에 주목하고 있다. 더 나아가 중국에 대한 방어벽을 한반도에 쌓으려 시도하고 있다.

 

 그래런 까닭에 위안부 배상문제는 뒷전이고, 독도의 영토문제, 왜곡된 교과서 등 분쟁의 씨앗을 뿌리면서 한편으로 정치 군사적으로 접근하는 강온 외교로 우리의 빗장을 풀려고 시도하고 있다. 

 

잊을만 하면 터지는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정치인들의 망언은 한반도를 유린하기 위한 단골 매뉴얼이다. 그들로선 손해 볼 게 없는 장사고, 여기에 대응하느라 한국만 피곤하다. 

 

미국의 기운을 등에 업은 채 한국을 난도질하고 있는 일본의 의중에 우리는 놀아나고 있다. 일본의 재무장에 한국 정부와 종일세력이 이렇듯 힘을 더해주니 일본으로선 가히 땅 짚고 헤엄치기이다. 조선 말 친일세력이 그들의 길을 앞장서서 닦아주던 기억을 떠올리며 축배를 들고 있다.

 

 

 

 ‘집단적 자위권’이란 자국이 직접 공격을 받지 않더라도 동맹국에 대한 군사공격에 대응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자위권의 확장으로 유엔 헌장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과거 일본은 ‘평화헌법’의 취지에 위배된다하여 그 행사를 스스로 금지해왔으나 이제 사정은 사뭇 달라졌다. 헌법재판소에서 여러 번 해석을 바꿔가며 적극적으로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려고 야욕을 드러내고 있다. 직접적으로는 한반도 및 그 주변에 배치된 미군과의 공동 군사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결국 중국과 북한을 겨냥하려는 목적이다. 

 

 일본 군사력은 육군 14만 명 군함 44,8만 톤 143척, 병력 42,000명, 공군 작전기 430기, 병력 4만3000명에 연간 방위예산이 409억 달러다.

 

  일본은 작년 12월 미국의 F-35 전투기를 자국에서 조립생산한다고 발표한 직후 내친 김에 나토 회원국 또는 한국과 오스트레일리아(호주)에 일본 무기를 수출할 수 있도록 ‘무기수출 3원칙’을 완화한다고 발표했다. 이제 한국이 F-35를 선정하기만 하면 일본은 한국에 전투기 부품 기지가 될 수도 있다.

 

 일본은 올해 4월 북한이 미사일 발사 시험을 하자 기다렸다는 듯 ‘우주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족쇄를 벗고 대륙간 탄도탄을 개발하기 위한 로켓의 대기권 재진입 시험을 한다고 발표했다. 이어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는 상황이 조성되면 우리 서해에 자위대의 이지스함을 파견한다는 발표도 나왔다. 

 

올해 6월 “국가안전보장에 이바지”하기 위해 원자력을 개발한다는 ‘원자력규제위원회 설치법’을 일본 중의원이 통과시켰다. 걸핏하면 핵과 미사일 무장을 예고하고 당당히 무기 수출을 추진하겠다는 일본에게 평화헌법 따위는 이미 안중에 없는 것이다.

 

 일본은 향후 한반도에서 유사사태가 발생하거나 동맹국의 군대를 보호하기 위해 대응한다는, 집단적 자위권이란 명분아래 군대를 파견하여 자국민을 보호하고, 북한의 미사일을 효과적으로 제압하기 위해 한국군과 합동작전을 수행하는 근거를 만들었다. 그들은 한반도 평화통일은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통일된 한반도는 과거 1차 세계대전의 배경이 된 통일독일의 출현과 유사한 위협이라는 게 일본의 인식이다.

 

 

 

  이런 일본의 재무장 움직임이 한국 안보와 더 나아가 통일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 순진한 사람들이 청와대, 총리실, 국방부, 외교부를 장악하고 있다. 

 

한국 내 종일세력은 북한과의 민족화합이 두려워 일본을 끌어들여 전쟁이라도 할 기세다. 일본에 한반도 문제 개입의 명분과 발언권을 높여주는 것은 우리의 안보와 평화통일의 해법을 푸는 데 걸림돌이다. 

 

  '50년 자민당 정권'의 오랜 염원이은 ‘보통국가’이다. 자민당은 평화유지활동(PKO) 시 무력사용을 허용하는 국제협력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가 좌절되었다.

 

 그런데 우파 정권 때 실패한 문제들이 민주당 정권에 의해 일거에 실현될 태세다. 노다 총리의 자문기관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헌법 해석을 변경할 것을 건의했다. 문제가 된 군사정보협정 등 한-일 군사협력 일본 헌법 9조 “평화헌법”의 해석을 바꿔가며 군사 대국화를 시도하는 그들은 한반도를 달리는 호랑이 등에 올려놓았다. 뛰어 내려도 큰 상처가 예상된다.

 

 이미 이들이 일본의 군사위성과 이지스 구축함이 한국의 안보에 결정적으로 기여할 것이라는 희망적 사고를 피력하는 동안 우쭐해진 일본이 ‘원자력규제위원회 설치법’을 만들고 집단적 자위권으로 일본헌법 9조를 무력화 하여 군국주의의 혼령을 불러들이고 있다. 북한 폭격을 정당화하는 일련의 작전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김태효 기획관은 청와대 입성 이전부터 한-일 안보 협력론자였다. 2003년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시절 ‘한-미-일 안보협력의 가능성과 한계’라는 논문에서 “여론을 자극하지 않는 방법으로 필요한 기능적 협력을 강화할 수 있는 ‘한-일 안보협력지침’을 국방 책임자간에 합의하는 게 필요하다”고 썼다. 2006년 쓴 논문에서도 한-일 관계를 ‘민주동맹’으로 거듭나게 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센카쿠 열도는 청일전쟁의 결과로 일본이 실효지배하게 됐다. 청일전쟁은 한반도를 놓고 중-일이 벌인 전쟁이다. 10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일본과 군사협력을 강화하려고 한다. 중국은 자신에 대한 포위망 돌파 지점을 ‘핵심이익’, 즉 주권과 영토, 안보가 위협받고 있을 때 우월한 상대에 맞서 ‘선제공격’이란 억제력의 전술에서 해법을 찾을 가능성이 크다. 향후 한반도의 안보는 어떻게 해야 할지 시대를 꿰뚫은 혜안이 필요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