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임종석이 9월 19일 ‘9.19 남북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에서 기조연설을 했다.

당시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이었던 그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두 개의 국가를 수용하자”라고 제안했다. 또한 “헌법 3조 영토조항을 지우든지 개정하자”라고도 했다.

그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한 것도 모자라 통일부를 정리하자고까지 요구했다. 그러니 그의 주장은 사실상 통일 포기선언이나 다름없다.

그의 무책임한 발언을 강력히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남북이 유엔 동시 가입으로 구체적으로는 별개의 주권국가로 공인됐음에도 불구하고 상호 간에는 국가로 인정하지 않기로 한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우리가 독자적으로 북한 안정화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에 닥쳤을 때 제3국의 시비를 차단하고 개입을 정당화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다. 만일 북한을 국가로 인정한다면 국제법상 유엔 안보리의 승인 없이는 자위권의 범위를 벗어난 군사개입이 불가능해진다.

따라서 대한민국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할 수 없고, 북한의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 헌법 제3조의 영토조항을 개정하는 미련한 짓을 해서도 안 된다.

과거 서독이 동독의 집요한 국가승인과 2국 체제 전환 요구를 끝까지 거부한 이유 속에 답이 있다. 이른바 ‘두 국가론’은 김정은 정권이 남북의 국력차를 감당하지 못해 흡수통일될 가능성을 우려해 내놓은 고육책에 불과하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의 9.19선언과 군사합의를 평화 안전판이라고 자찬해왔으나 북한은 이를 이행하기는커녕 외려 각종 도발을 감행해왔다.

북한은 핵미사일 고도화 시간을 번 뒤에 최근 고농축 우라늄 제조시설을 공개하고 핵 증산 방침까지 밝혔다.

문 전 대통령과 임 전 실장이 북한의 기만전술에 휘둘린 실책을 반성하거나 사죄하지 않고 현 정부의 대북 안보태세 강화를 비난하는 것은 염치없는 행위이자 적반하장식 행태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난 20일에도 윤석열 대통령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흡수통일 의지가 없음을 거듭 표명해온 역대 정부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라고 비판하면서 “남북대화가 선행되고 북미대화까지 이끌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통일 포기’ 발언의 후폭풍이 여간 심상치 않다. 임종석이 누구인가. 전대협의 3기 의장 출신으로 과거 임수경 방북 등을 주도했던 인물 아닌가. 그의 이른바 통일 포기 발언은 대단히 의외라는 평가다.

특히 국민의힘 쪽에서는 통일하지 말고 두 개의 국가를 수용하자고 밝힌 데 대해 “북한 주장이랑 닮아도 너무 닮았다”고 지적하는 의견이 대세다. 심지어 이런 사람들이 주축을 이룬 민주당 정권이 다시 들어서면 이 나라를 통째로 갖다 바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냐고 흥분하는 사람이 많다.

김용태 의원 같은 이는 “그동안 북한의 ‘우리민족끼리’에 집착하며 줄기차게 통일을 주장하더니 이제 북한이 통일하지 말자고 하니까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저버리고 호응하는 행태를 과연 어느 국민이 이해할 수 있겠는가”라고 지적했다.

북한은 결코 통일을 포기한 사실이 없다는 것을 대한민국 5,000만 국민 가운데 장삼이사도 꿰뚫고 있는 사실이다. 다만 남북체제경쟁에서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자 화해와 협력에 의한 평화통일을 포기하고 핵무력에 의한 적화 흡수통일로 돌아섰을 뿐인데 불과 5년 전 “통일운동에 매진하고 싶다”라고 했던 게 임종석 아니었나?

그런 아둔하고 좁은 가슴으로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으니 그런 사람의 조언을 받고 학습된 대통령의 머리에 무엇이 들었을지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다.

1950년 남침을 자행한 그의 할아버지 김일성이 그랬듯이 필자는 김정은도 전쟁하기로 전략적 결정을 내렸다고 본다. 북한이 대한민국을 주적으로 천명하고 협박 강도를 높이는 가장 큰 이유는 주민들에게 이른바 ‘남조선’은 통일 대상인 동족이라고 가르치면서 남쪽을 향해 핵공격을 거론하는 모순을 정리해야 했을 것이라는 점이 그것이다.

김정은이 2023년 12월 노동당중앙위 전원회의에서 남북관계에 대해 “더 이상 동족 관계, 동질 관계가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라고 선언하면서 북한의 대남 정책 기조로 자리 잡았다.

김정은 선언 이후 북한은 김일성‧김정일 때부터 내려온 민족개념에 기반한 ‘조국 통일’ 원칙을 폐기하고, 대남사업부문 기구를 정리하는 등 김정은 지침을 이행하고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거니와 북한의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 헌법 3조의 영토조항을 개정하는 미련하기 짝이 없는 짓(임종석은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를 대한민국 영토로 규정한 헌법 3조 개정과 국가보안법 폐지, 통일부 정리 등도 제안했다), 좌우 진영에서 통일을 포기하고 2국 체제로 가자는 주장이 분출하더라도 우리 정부는 확고하게 중심을 잡아야 한다.

서독이 동독의 집요한 국가승인과 2국 체제요구를 끝까지 거부한 이유 속에 답이 있다. 적대세력의 침략위협을 막기 위한 특단의 조치로 1974년 당시 동독 통일사회당서기장 호네커가 ‘두 개의 독일’을 일방적으로 선언했으나 서독은 끝까지 동독의 요구를 거부했다.

지금 북한 김정은이 두 국가를 선언한 것은 70년대에 있었던 동독 따라 하기 그대로이고 임종석의 반통일 선언은 김정은 따라 하기 아닌가?

우리 정부가 기존의 ‘민족공동체 통일 방안’을 대체할 새로운 통일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그 명칭에 ‘자유’를 넣는 방안이 강력하게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 정부는 김정은이 무슨 논리로 ‘민족’을 부정해도 반드시 ‘통일’을 주도해야 한다.

김정은이 남북한은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관계’라는 2민족론을 내세우며 통일 지우기에 나선 것이 확실한 사실 아닌가? 역설적으로 김정은의 통일 기피증은 오히려 통일을 앞당길 수도 있을 것이다.

2민족론은 북한 정권의 자충수다. 그뿐만 아니라 문 전 대통령과 임종석 전 실장 등 두 사람의 발언은 정권의 대남전략 변화에 보조를 맞춘 것으로 풀이되고 김정은의 통일 반대입장을 그대로 따라 한 궤변이어서 충격을 주고 있다. 김정은 따라 하기는 종북이 아니라 忠北이라고 비판한 오세훈 서울시장의 비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북한의 기만전술에 속은 것인지, 아니면 알면서도 휘둘린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자신들의 실책을 반성하거나 사죄하지 않고 윤석열 대통령 정부의 대북 안보태세 강화를 비난하는 것은 몰염치한 적반하장식 행태다.

북한은 11월 미국 대선 전후에 핵위기를 고조시켜 미북정상회담을 유도한 뒤 핵동결과 대북제재완화 맞교환 등을 노릴 가능성이 높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자주 국방력과 한미동맹을 강화해 북한의 도발에 강력한 응징이 뒤따를 것임을 깨닫게 해야 한다.

류근찬

통일이답이다국민운동본부 상임고문

제 17대, 18대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