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와 탈냉전시대의 도래는 결과적으로 북한에게 체제위기상황을 초래할 정도의 엄혹한 시련을 안겨주었고 대남혁명역량이 통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현재 북한은 외부환경뿐만 아니라 내부자원 고갈에 따른 경제난 심화라는 대내적 도전으로 인해 체제의 존립 자체에 위협을 받고 있다.

북한은 이러한 현실상황을 인식하고 체제안정과 경제회복에 중점을 두고 이를 위해 대내체제를 정비하는 한편, 전방위적 외교정책을 구사하고 있다.

1999년 9월 미국이 페리보고서에 기초해 대북정책의 틀을 정비하고 대북 경제제재를 완화하는 조치를 취한데 이어 북한도 이에 맞춰 미사일발사 유예를 선언하는 등 양국관계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드는 듯 했다. 이는 지난 1993년 이후 이른바 ‘벼랑끝 외교’를 통해 미국을 압박하면서 미국과의 외교관계 수립을 목표로 추진해온 북한의 대미정책이 급선회하고 있음을 뜻한다. 2000년 6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성공적인 결실을 맺음에 따라 자연스레 북·미관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남북 정상회담이 끝난 직후 미국은 1999년 9월에 발표한 북한에 대한 경제재재 완화 방침을 실행에 옮긴 데 이어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 직후 대북경제제재 해제를 확대, 실시했다.

북한과 중국관계는 2000년을 맞으며 90년대 중반 이후 소원한 관계를 청산하고 정상적인 관계를 복원한 것으로 분석된다. 1999년 6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의 중국방문에 이어 2000년 5월 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비공식 중국방문이 가져온 결과이다. 특히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방문은 남북관계에 대한 중국의 입장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되어 북·중 관계개선이 남북관계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음을 나타냈다. 그러나 중국으로서는 이제 한국의 입장을 외면할 수 없을 만큼 한·중 관계가 긴밀해졌기 때문에 북한과 중국관계가 예전처럼 정치군사적 동맹관계로 이어질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따라서 북·중 관계 역시 정치군사적 측면보다는 경제교류와 협력에 초점을 맞춰 관계를 정립해 나가고 있는 추세에 있다.

1998년 8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급격히 냉각된 북·일 관계는 1999년 들어 화해의 분위기로 반전됐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문제를 포괄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한·미·일 공조의 결과였다. 일본은 1999년 12월 초당파 의원대표단을 북한에 파견, 노동당대표단과 회담을 갖고 국교정상화를 위한 북일회담을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해 일본은 1998년 9월에 취했던 대북 경제제재를 12월 14일 전면 해제했다.

이에 앞선 다음해 8월에는 북한이 정부성명을 통해 북·일 관계 개선을 위한 3개항의 원칙을 제시하는 등 일본과의 관계개선 의지를 표명했다. 이러한 상황변화에 따라 제8차 회담 후 7년반만인 2000년 4월 북경에서 북·일 수교회담이 재개됐다.

특히 남북정상회담에 즈음해 일본의 모리 요시로 총리가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명한데 이어 2000년 9월 19일 NHK 회견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권고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실현시킬 것이라고 밝힘으로써 향후 북·일 관계가 급진전될 것임을 예고했다.

북한은 한반도 주변 4국과의 외교관계를 개선하는 특히 대서유럽국가들과의 관계 강화에 주력했다. 대서유럽국가들을 대상으로 한 북한의 외교적 노력은 1999년 9월 유엔총회에 참석한 백남순 외무상이 이들 국가 외무장관과 연쇄 회담을 한 것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이들 회담을 계기로 북한은 2000년 1월 4일 서방선진 7개국 중의 하나인 이탈리아와 수교했다. 북한의 백남순 외무상은 이와 함께 벨기에, 프랑스, 독일, 그리스, 아일랜드,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스페인, 영국을 비롯한 유럽 9개국과 유럽위원회 대외관계 담당위원에게 수교제의를 담은 편지를 보내는 등 적극적인 대유럽 외교공세를 보냈다. 현재 북한은 15개 EU 회원국 가운데 이탈리아를 비롯해 스웨덴, 핀란드, 포르투갈, 덴마크, 오스트리아 등 6개국과는 이미 외교관계를 맺고 있다.

서유럽국가들에 대한 북한의 외교는 유럽연합(EU)과 개별국가를 상대로 한 이원적 접근방식으로 이루어지는 특징을 보였다. 남북한의 평화와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우선 민족 내부적 통일기반을 정비하면서 국제적 통일기반도 조성해 나가야 할 것이다.

우선은 남북 화해와 교류·협력의 확대를 통해 ‘사실상의 통일상태’를 구현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주변 4국들이 남북한 통일의 당위성과 불가피성을 인정하도록 하고, 남북한 당국과 주민의 적극적인 통일의지를 바탕으로 궁극적인 평화통일의 길을 열어 나가야 할 것이다. ‘사실상의 통일상태’가 구현되거나 남북한 통일이 동서독의 통일처럼 급속도로 가시화될 경우, 주변 4국이 소극적인 자세에서 탈피하여, 남북한의 통일을 지원하도록 이끌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한 관계에서 실질적인 신뢰구축이 이루어져야 한다.

류 근 찬

‘통일이 답이다’ 국민운동본부 상임고문

제 17, 18대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