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易經)에 이르기를 모든 사물이 궁극에 이르면 변화를 일으키고(窮則變), 변화가 일어나면 막혔던 것이 통하게 되며(變則通),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면 오래 지속된다(通則久)고 한다. 헤겔의 변증법도 이 역경의 세계관을 차용(借用)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사회의 발전과정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승만 체제가 장기독재로 막히자 4.19혁명이 일어났고, 유신체제가 극단에 치닫자 10.26 사태가 발생했다. 신군부독재도 국민의 저항에 무너지고 마침내 민주주의 체제가 등장하였다. 철옹성 같던 아랍세계의 장기독재체제가 모래성처럼 사라지는 현상을 우리는 목도했다. 그 기세등등했던 리비아의 카다피가 하수구 속에 숨었다 피살되리라는 것은 누구도 상상하기 어려웠다.

북한 체제는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없어 보인다. 우상화, 선군정치, 세습제 이 세 가지가 북한체제의 특징이다.

모두 다 인류문명의 발전방향과는 상극(相剋)이다. 북한 주민들의 정치적 자유와 물질적 기초는 계속 악화되어 한계상황을 넘은지 오래됐다. 줄잡아 300만 명 이상 굶어죽었다니 더 긴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 체제만이 변화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그리고 중국처럼 북한 체제엘리트들이 개방과 개혁을 통해 질서 있는 변화를 추구할 기회는 많이 있었고,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도무지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미국이 북한체제 변화에 관해 정밀 분석에 들어갔다고 알려졌다. 1994년 영변 핵 위기가 터지고 제네바에서 미국과 북한이 협정을 체결했을 때, 미국 정보기관들은 북한 체제가 5년 안에 무너질 것으로 분석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예측은 빗나갔고 제네바협정은 파탄의 길을 걸었다.

2011년 김정일 사망 후 권력을 세습한 20대의 김정은이 과연 성공적으로 북한을 이끌 수 있을 것인가. 몇 해 전 한국을 방문한 러시아 세계경제국제관계연구소(IMEMO) 부소장 미헤예프(Vasily Mikheev) 박사의 전망이 눈길을 끈다.

미헤예프는 “북한은 권력 이양 후 시장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붕괴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김정은이 불과 수년의 승계수업밖에 받지 않아 권력 이양 후 10년 안에 북한 체제가 붕괴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최근 북한의 정세변화를 보면 그의 분석이 적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북한에서 시장은 급속도로 확산되고, 주민들은 시장을 통해 생존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장성택 숙청은 경제개발을 밀어붙이는 시장 세력에 대한 군부세력의 반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군부세력이 북한사회를 통제하고 이끄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변화를 억압하는 기간이 길면 길수록 변화는 훨씬 더 빠르고 충격적으로 일어난다. 아랍세계를 휩쓴 재스민혁명의 폭풍이 이를 증명한다. 북한체제의 종말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이제 통일의 아침이 밝아온다. 건국의 시대, 산업화의 시대, 민주화의 시대를 거쳐 통일의 시대가 열리는 것은 필연의 과정이다.

통일의 결실은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는 민족 구성원 모두의 열망이 모아져 거대한 에너지로 폭발할 때에만 가능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 정치지도자 가운데 통일의 비전, 목표, 전략, 열정을 보여주는 사람이 거의 없다.

중국의 리펑이나 러시아의 푸틴 같은 외국 지도자들도 한반도에 통일의 여명이 밝아온다고 밝혔다. 그런데 정작 통일을 성취해야 할 절실한 상황에 처해있는 우리 지도자들의 의식은 분단의 밤을 헤매고 있으니, 이보다 더 한심한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폴란드에서 공산체제를 무너뜨리고 직선 대통령을 지낸 바웬사(Lech Walesa)가 2000년 초 서울을 방문했다. 당시 바웬사에게 여러 사람이 복잡한 한반도 정세를 설명했지만 그의 추궁하는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평양의 체제엘리트들은 보복이 두려워 통일에 저항하고 있으니, 대(大)사면령을 내리고 이 사실을 비행기로 북한 전역에 뿌려 알리면 된다고 방법론까지 진지하게 제시했다.

그는 공산체제 안에서 처절한 투쟁을 통해 민주체제를 세운 행동주의자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얼마 전 미국 랜드연구소의 한반도 전문가 베넷(Bruce Bennett) 박사가 국회 포럼에서 발표한 통일전략 가운데, 북한 체제엘리트들에게 사면(amnesty) 메시지를 계속 전파해야 한다는 내용을 보면서 바웬사의 통찰력을 실감한 일이 있다.

그렇다. 통일은 행동이고 열정이다. 여건을 만들고 때가 되면 무섭게 결단해야 한다. 통일은 우리 모두에게 재앙이 아닌 축복이라는 굳건한 믿음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대한민국이 앓고 있는 실업, 빈부격차, 노령화의 통증을 무엇으로 해결할 수 있단 말인가. 부자의 살점을 뜯어 나누어주면 해결될 것인가. 처음 몇 번은 몰라도 계속해서 살점을 내어줄 부자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어디에도 없다.

이런 포퓰리즘이 국민의 갈증만 키우고 나라에 큰 재앙을 몰고 온다는 사실은 지금 그리스 등 여러 나라들이 보여주고 있다. 통일이 가져다 줄 폭발적 시장의 확대만이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이 심각한 통증을 치유할 처방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북한 주민들도 우리 국민이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자유로운 체제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 더 민주적인 정치체제, 더 번영하는 경제체제를 향해 통일을 이루는 것 이외에 다른 길은 없다. 통일은 북한 주민들로 하여금 최단 시일 안에 자유와 번영을 누릴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그 통일의 결정적 시점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거듭 말하지만 북한 체제엘리트들에게도 어떤 보복이나 차별은 없다. 동독 출신 메르켈을 보라. 그녀가 통일 독일 최고지도자가 되는데 16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필자는 통일 이후 그보다 더 빠른 시간 안에 북한 출신 대통령이 등장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통일은 그들에게도 축복으로 다가올 것이다.

우리에게는 건국의 소명, 산업화의 소명, 그리고 민주화의 소명을 받들다가 자신의 에너지를 모두 불태운 위대한 지도자들이 있다. 이제 통일의 소명을 받들기 위해 자신을 불태울 지도자가 등장해야 할 때이다.

독일 통일을 지휘했던 콜 총리는 통일을 의심하고 반대하던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통일이라는 버스가 왔을 때 타야 한다. 그냥 놓쳐 버리면 언제 다시 버스가 올 것인가!”

우리는 지도자를 중심으로 단결해 통일의 기회를 반드시 잡아야만 한다. 통일 결단을 향해 민족의 에너지를 모아나가야 할 시점인 것이다.

류 근 찬

‘통일이 답이다’ 국민운동본부 상임고문

제 17대, 18대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