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미국과 굳건한 동맹관계를 맺으면서 경제성장이라는 한 길로 달려왔다. 그 결과 한국은 전쟁의 폐허를 딛고 국민의 뛰어난 재활능력, 미국의 안보 우산 아래 세계 시장 개척, 그리고 선진국의 자본과 기술을 응용해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우리 경제의 성공 토대는 바로 한·미동맹이었다.

중국이 급부상하면서 한·중 교역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이제 중국과의 교역액은 미국, 일본과의 교역액 합계를 넘어서고, 중국으로부터 얻는 무역흑자로 일본과의 무역적자를 메우고도 남을 정도가 되었다.

한·중 정상회담에서 밝힌 대로 양국의 교역이 2015년까지 3,000억 달러까지 늘어나고 한·중 FTA까지 체결되면서 한·중 양국관계는 뗄 수없는 관계가 됐다.

한국경제의 성장 동력은 한·미 동맹에서 점차 한·중 협력관계로 옮겨오고 있다. 이에 따라 한·미 동맹의 역할은 경제 분야보다는 북한의 위협을 억제하는 군사안보적인 기능으로 축이 이동되고 있다. 우리 안보는 굳건한 한·미 동맹의 견지로, 경제는 중국과 지속적인 협력으로 확대 발전해가는 추세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미국과 중국이 첨예하게 대립하지 않을 때에 유지될 수 있다. 미·중 양국 정상이 신형 대국관계에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Rebalancing to Asia)’ 정책과 중국의 ‘주동작위(主動作爲: 해야 할 일은 주도적으로 한다)’ 전략이 사안별로 충돌하고 있다. 국제정치학에서는 흔히 안보와 정치를 상위정치(high politics)라 하고, 경제와 사회를 하위정치(low politics)라 부른다. 어쨌든 한·중의 긴밀한 경제협력은 한·미 안보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오늘날과 같이 대립적인 동북아 정세 속에서 한국은 한·미 전략적 동맹과 한·중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 사이에서 때때로 외교적인 선택을 압박받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안보적으로 미·일 주도의 미사일방어(MD)에 참가하는 문제이다. 경제적으로는 미국이 주도하는 환태평양 동반자협정(TPP)과 중국이 주도하는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 사이에서의 선택 문제이다.

우리 정부는 일단 양쪽에 모두 참가한다는 방침이지만, 경우에 따라 양쪽 모두가 의구심을 보일 수도 있는 정황이다.

우리가 미·중 사이에서 직면하고 있는 최대 과제는 북한문제이다. 북한은 핵무기보유국 지위를 누리려고 하고 있다. 북한의 군사위협을 효과적으로 억제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한·미동맹의 견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미국이 확장 억제력을 제공하고 일본의 후방지원태세를 유지하는 것은 북한의 군사위협을 넘어 중국과 러시아의 잠재적인 위협을 억제하는 유효한 수단이라는 미국 구상도 잘 읽어야 하겠다.

동북아지역의 인도적 과제 중 하나는 탈북민 문제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적극적인 노력과 협력이 불가결하다. 이제 우리에게 중국은 단순한 경제협력의 대상이 아니라,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그리고 북한 핵문제를 푸는 데서 협력이 불가피한 파트너가 되었다. 그런 점에서 한·중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는 경제뿐 아니라 안보 분야까지 외연을 확대해가리라고 본다.

우리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는 미국·일본과의 안보적 협력과 중국과의 경제적 협력이라는 고정된 틀을 넘어 새로운 질서를 요구하고 있다. 그렇지 못할 경우, 우리는 미국과 중국 또는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어떻게든 양자택일의 선택을 강요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리게 될 수 있다.

한국이 세계 10위권 대의 국력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가 미국과 중국, 일본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을 주도적으로 바꿀 여건은 못 된다.

주변 강대국들이 분단 상황을 이용하여 자국 이익 위주로 나간다면, 우리 처지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는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 한국은 동북아지역의 질서 재편과정에서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겠다는 소극적인 태도를 넘어, 이를 평화통일의 기회로 만들어 가겠다는 대담한 구상을 실천에 옮겨야 한다. 화(禍)를 복(福)으로 삼자는 이야기다.

동서독은 유럽에서 냉전이 해체되는 국제질서의 재편 과정을 활용해 통일 기회를 움켜쥐었다. 이에 비해 우리는 국제질서의 전환기에 그 기회를 그냥 흘려보낸 바 있다.

이제 동아시아에서 또다시 밀려오는 새로운 국제질서의 재편 물결을 어떻게 대처해서 평화통일의 기회로 삼을 것인가. 이는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중대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동북아의 새로운 물결이 우리에게 커다란 도전이지만, 이 흐름을 잘 타고 오른다면 통일의 기회를 잡게 될 수 있을 것이다. 남북 평화통일이 동북아의 정세 변화를 헤쳐 가는 지름길인 셈이다.

우리가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미국과 중국, 일본 사이에 흐르는 대립과 분열의 물줄기를 협력과 통합의 물줄기로 바꾸어 놓는데 적극 협력해야 한다. 동북아 지역 내에 협력과 통합의 리더십이 자리를 잡도록 일조를 다해야 한다. 그런데 북한의 정세가 불안하고 쉼 없이 각종 도발을 저지르면, 우리의 입지는 좁혀질 수밖에 없다. 이 상황을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바꿔야만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한반도 문제의 한반도화’를 이루어야 한다. 강대국들이 남북한의 사이를 갈라놓을 수 없도록 남북이 평화공존을 이룩하고 평화통일의 기반을 조성하자는 것이다.

남북관계가 대결과 긴장으로만 치닫게 된다면, 우리의 발언권은 약화되고 주변 강대국은 자기 이익에 따라 남북의 명운을 좌지우지하고 싶은 유혹에 빠질 수 있다. 남북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과연 언제까지 평화통일의 에너지를 갉아먹는 긴장과 대결에 얽매일 것인가. 민족자결과 민족의 자존은 기본이다. 남북은 이제라도 평화통일을 가로막는 걸림돌들을 하나하나 없애 나가면서 통일의 기반을 쌓아야 한다.

류 근 찬

‘통일이 답이다’ 국민운동본부 상임고문

제 17대, 18대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