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독 통일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동독 주민들은 무혈, 평화 혁명을 선택했고, 동독의 공산체제가 와해됨으로써 통일을 이루었다. 동독 주민들은 서독체제를 동경해왔다. 동독의 인민회의는 서독 기본법 23조(동독 5개주가 서독의 각 주로 편입되어 기본법의 효력을 당장 적용받았다)에 따른 조건 없는 통일 방식을 결정했다(1990. 8. 23).

독일 통일은 동독의 자발적 의사에 따른 흡수통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서독은 흡수통일에서 있을 수 있는 동독에 대한 어떠한 차별이나 보복을 행하지 않았다. 동서독은 대등하며 포용적인 통일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독일통일을 합류통일이라고 부르는 것이 정확하다.

한반도 통일은 어떤 방식이 바람직할까. 한국 주도의 ‘무혈 평화통일’과 ‘합류(合流)통일’이 바람직하다. 물론 독일통일과 똑같은 과정 그리고 방식을 기대하는 것은 낭만적일 수 있다. 그렇게 되려면 북한 주민의 저항에 의해 북한체제가 스스로 와해되어야 한다. 또한 북한 주민은 혹독한 억압과 굶주림에 지쳐있어 폭발적인 저항에너지의 분출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하지만 북한 안에서 시장은 확대되고 주민들에게 외부세계의 정보는 하루가 다르게 확산되고 있다. 여기에 장성택 숙청 이후 북한체제의 균형이 요동치기 시작하면서 언제 뒤틀릴지 모르는 상황인 것으로 보인다. 어떤 형태로든 북한 내부에서 본질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필연이다.

지난 해 세계적 경제사학자인 하버드대의 니얼 퍼거슨(Neal Ferguson) 교수는 2020년 안에 북한이라는 나라가 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우리는 막연히 독일 모델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조건과 한반도 정세에 맞는 우리 방식의 평화통일을 만들어 나가는 지혜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통일은 역사발전법칙의 산물

한반도 통일은 한국 주도로, 독일패턴처럼 정반합(正反合)의 역사적 발전과정을 거쳐 이루어질 것으로 본다.

동서냉전은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축으로 하는 서방진영(서독)의 일방적 승리로 종식되었다. 반면, 동구 진영(동독)의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계획경제체제는 자체 모순으로 붕괴되었다. 이미 실패한 주의(主義)와 체제로 입증된 것이다.

북한체제도 중국식 개혁개방을 통해 변화되지 않는 한, 동구국가들의 전철을 밟게 되리라는 예상이다. 서독이 이끌었던 독일 통일은 한반도 통일 역시 국력의 절대 우위를 점하고 있는 한국 주도로 이루어질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독일 통일은 역사적 변증법에 따라 「정반합」으로 발전되는 오랜 과정의 산물이다. 서독의 아데나워 수상은 친서방 정책(Westbindungpolitik)과 힘의 우위 정책(Politik der Stärke)으로 엄청난 국력차를 보이며 동독을 압도했다(正).

브란트 수상은 압도적인 국력을 바탕으로 동독을 포용하는 동방정책(Ostpolitik)을 추진했다. 동서독 기본조약을 체결하고 양독간의 교류협력을 강화하며, 민족 이질감을 줄여 나갔다(反).

헬무트 콜 수상은 양독간 교류협력을 제도화하고 강화시킨 결과, 통일을 성취할 수 있었다(合).

독일 통일은 「국력 신장」과 「교류협력」의 합(合)이 곧 통일이라는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 통일은 어느 한 순간 갑자기 이룩되는 것이 아니다. 시대적 상황에 따라 필요충분한 여건들이 꾸준히 성숙되고 결정적인 호기가 왔을 때, 비로소 이루어지는 긴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

통일기반의 조성과 관련해 한국은 서독과 비교할 때 어디쯤 와 있을까.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은 아데나워 수상과 비견된다. 굳건한 한·미 안보동맹정책을 바탕으로 산업 근대화의 기반을 구축, 한국을 경제 대국으로 성장시켜 통일을 주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서독 브란트의 동방정책과 유사하다. 대북포용정책으로 남북한 간에는 비군사적인 분야에 있어서 교류와 협력을 통해 많은 진전도 있었다. 그러나 군사적 긴장 완화와 남북 화해협력을 제도화하는 데는 실패했다. 따라서 동방정책으로 동·서독간의 교류와 협력을 제도화시킨 서독의 브란트 수상과는 차이를 보인다.

문재인 정부의 통일정책 핵심 과제는 ①국내적으로 평화통일 기반을 구축하고, ②김대중·노무현 정부가 해결하지 못한 남북간 군사적 긴장완화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포기시키면서, ③남북화해협력을 크게 확대시키고 제도화함으로써 장차 남북 정치·경제 공동체의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다.

류 근 찬

‘통일이 답이다’국민운동본부 상임고문

제17대, 18대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