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이 한반도에 주는 핵심 메시지는 교류·협력의 중요성이다. 서독은 분단 직후부터 40여년에 걸쳐 꾸준한 접촉과 교류·협력을 통해 동독의 체제 변화를 유도했다. 1989년 초부터 동독 시민들이 아래로부터 반체제시위를 격화시키면서 같은 해 11월 9일 마침내 동독 공산당체제는 붕괴되었다. 그리고 1990년 동독 내에서 처음으로 자유선거를 통해 의회와 임시 정부를 구성하고, 여기에서 서독과의 조건 없는 통일을 실행하였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독일의 1989-1990년 기간에만 초점을 맞추어 동독이 무너진 것처럼 북한도 곧 무너져 한반도에 통일이 도래할 것이라고 인식하는 경향도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북한 변화를 위해 우리가 얼마나 에너지를 쏟아 부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통일로 가는 북한의 변화는 저절로 기다리기만 해서 오는 것이 아니다. 통일 이후에도 길고 고통스런 통합과정이 기다린다. 독일은 통일된 지 20여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경제통합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심리적, 문화적 통합 역시 아직 갈 길이 멀다. 40년간의 분단 격차가 20년 만에 치유되기 힘들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분단이 길어질수록 치유기간도 더욱 더 길어진다. 남북한은 국가형태의 차이, 엄청난 경제적 가치, 첨예한 군사적 대치, 사상과 이념의 차이로 인해 과거 동서독보다 훨씬 더 많은 이질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남북한은 동서독의 경우보다 ‘훨씬 더 많은 교류와 협력’을 필요로 한다.

독일의 교류·협력으로부터 우리가 배울 점은 경제교류가 그 어떤 군사적 수단보다도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강한 무기라는 것이다. 나토(NATO)는 총 한 발 쏘지 않고 오직 교류·협력을 통해 동구권의 공산주의체제를 무너뜨렸다. 총보다 경제교류가, 그리고 사회문화적 접촉면이 넓어질수록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사례라고 하겠다.

동서독의 교류·협력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었던 이유는 안보문제가 양독간 교류·협력에 큰 걸림돌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독은 서독에 대해 군사적 도발은 물론 국제사회를 대상으로 안보위협을 가한 적이 없다. 그래서 동서독간의 교류·협력은 외부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원만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

현재 남북기본합의서는 북한의 핵문제 등으로 전혀 이행되지 못한 채 사문화된 상태이다. 남북 교류·협력 관계가 거의 전 분야에 걸쳐 경색되었기 때문에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포용정책과 교류·협력 정책은 무력화되었다. 따라서 북한 핵문제와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완화 등 한반도 안보문제의 해결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남북간 교류·협력분야에 진전을 기대하기 힘든 실정이다.

이제까지 발전되어온 남북 사이의 교류·협력 수준은 전반적으로 1945년 분단 당시의 동서독 간의 교류·협력 수준보다도 질적·양적인 면에서 한참 뒤떨어져 있다. 북한 당국은 남북기본합의서 체제로 하루 속히 복귀하던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한 당사자로 들어오던지 결단을 내려야만 한다.

북한 주민들은 남한과의 교류·협력이 진행될수록 남한체제가 훨씬 우월하고 살만한 체제라는 시실을 스스로 깨닫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따라 모순으로 범벅이 된 북한 체제로부터 북한 주민들이 해방되길 원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남북간 교류·협력은 북한 경제가 중국에 의존하는 것을 막고, 민족경제공동체로 합류시키는 훌륭한 수단이다.

중장기적으로의 개방과 민주화에 기여할 것이 틀림없다. 북한 경제가 남북간 교류·협력으로 향상되면, 북한 이주민들의 대량 남하 사태를 미리 예방할 수 있다. 이로써 북한 지역의 산업공동화 현상이나 남한 노동시장의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지도부는 북한의 경제난, 식량난과 에너지난 등이 계획경제체제의 문제점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 한국과의 교류·협력만이 북한 경제의 삼중고(三重苦)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라도 잘 인식해야 한다.

북한 지도부는 대외 지불능력의 상실과 열악한 인프라로 인해 한국 이외에 어떤 나라도 선뜻 북한에 투자하기를 꺼린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북한 지도부는 지금이라도 최소한 중국이나 베트남 방식을 따라 개방과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그들이 이런 결정을 한다면, 한국정부는 쾌히 북한의 체제전환 노력을 적극 지원하게 될 것이다.

류 근 찬

‘통일이 답이다’ 국민운동본부 상임고문

제 17대, 18대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