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법원은 사형집행 49년 만에 위장간첩 이수근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김일성 수행기자 출신이자 조선중앙통신사 부사장이었던 이 씨는 제3국으로의 망명을 시도하다가 베트남에서 체포돼서 압송당했다. 내려진 죄목은 '이중간첩'. 북의 지령을 받고 위장해서 귀순했다는 것이다. 사형선고가 내려진 뒤 집행까지, 두 달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수근 씨는 1969년 1월 베트남 탄손누트 공항에 도착했다. 한국을 떠나 중립국 스위스로 향하던 길이었다. 귀순 직후부터 자신을 간첩으로 의심한 중앙정보부 감시를 못 견디고, 여권을 조작해 해외로 떠날 계획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베트남에서 미리 기다리던 중앙정보부 관계자들이 이 씨를 체포했다. 이후 수사에서는 국가 기밀을 북한으로 빼돌리다 탈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추궁이 이어졌다. 수사관들은 이 씨를 가둬두고 끔찍한 구타와 전기 고문 등을 이어갔다.

결국 이 씨의 조서에는 간첩을 인정하는 가짜 자백이 담겼었다. 법원은 사형을 선고했고, 두 달 뒤 형이 집행됐다.

재판부는 "이 씨가 연행된 뒤 40일 넘게 감금된 상태에서 고문과 폭행으로 허위 자백을 했을 개연성이 충분하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방어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 채 위장 귀순한 간첩으로 낙인찍혀 생명을 박탈당했다. 암울했던 권위주의 시대에 일어난 과오에 대해 진정으로 용서를 구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