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잔과 적대(炙臺, 고기 담는 그릇) 사이에서 적의 충차(衝車)를 꺾어 버리다.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술자리에서 외교 협상을 통해 적을 이기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능란한 외교술을 비유하는 말이다.

춘추시대 제(齊)나라 장공(莊公)이 신하인 최저(崔杼)에게 시해되자 장공의 동생이 뒤를 이었는데, 이이가 경공(景公)이다.

경공은 최저를 좌상(左相)에 임명하고 그를 반대하는 자는 죽이기로 맹세까지 했다. 모든 신하가 맹세했지만, 안영(晏嬰)만은 맹세하지 않고 하늘을 우러러보며 탄식했다.

“왕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위하는 사람이라면 좋으련만.”

그 후 최저가 살해되자 경공은 안영을 상국(相國)에 임명했다. 안영은 온후하고 박식한 사람으로, 호구(狐裘, 여우 겨드랑이 털가죽으로 만든 갖옷) 한 벌을 30년이나 입었을 정도로 검소하게 살았다.

언젠가 경공이 식읍(食邑)을 하사하려 하자 안영은 “욕심이 충족되면 망할 날이 가까워집니다.”라고 말하며 사양했다.

당시에는 12개의 대국에 작은 나라까지 세면 1백여 나라가 있었는데, 안영은 이들을 상대로 외교적 수완을 발휘하여 제나라의 지위를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진(晉) 평공(平公)이 제나라를 칠 생각을 하고 범소(范昭)를 보내 제나라의 상황을 살펴보도록 했다.

경공이 술자리를 열어 범소를 대접했는데, 주흥이 오르자 범소가 일어나 말했다. “왕의 술잔으로 술을 마셨으면 합니다.” 경공이 말했다. “과인의 술잔에 술을 따라 손님께 드리도록 해라.” 범소가 자기 잔의 술을 다 마시자 안영이 말했다. “왕의 술잔을 치우고 범소가 사용했던 술잔에 술을 따라 드려라.” 범소는 취한 척하며 기분이 상해 일어나 춤을 추면서 태사(太師)에게 말했다. “나를 위해 성주(成周)의 음악을 연주해 주시겠소? 내 그대를 위해 춤을 추겠소.” 태사가 말했다. “익히지 못했습니다.” 범소는 술자리를 떠났다. 경공이 안영에게 말했다. “진나라는 대국으로, 사람을 보내 우리나라 정황을 살피게 했는데 이제 그대가 대국의 사자를 화나게 했으니 앞으로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안자(晏子, 안영)가 말했다. “범소의 사람됨은 비루하고 예의를 모릅니다. 또한 우리 왕과 신하들을 시험하려 했기 때문에 딱 잘라 버린 것입니다.” 경공이 태사에게 말했다. “그대는 어째서 손님을 위해 성주의 음악을 연주하지 않았소?” 태사가 대답했다. “성주의 음악은 천자의 음악입니다. 연주를 할 경우 반드시 왕이 춤을 추어야 하는데, 범소는 신하로서 천자의 음악을 춤추려 했기 때문에 신은 연주하지 않은 것입니다.”

범소가 돌아가 평공에게 보고했다. “제나라는 치기가 어렵겠습니다. 제가 그쪽 왕을 시험해 보려고 했는데 안자가 이를 알고 있었고, 그 음악을 범해 보려고 했더니 태사가 이를 알고 있었습니다.” 평공은 제나라를 칠 계획을 철회했다. 중니(仲尼, 공자)가 이를 듣고 말했다. “훌륭하구나. 술잔과 적대 사이에서 나가지 아니하고 천 리 밖에서 적의 공격을 꺾어 버린다 함은 안자를 두고 하는 말이구나. 그리고 태사도 그에 함께 하였구나,

한미 양국이 대북제재 문제 등을 조율할 워킹그룹 설치에 합의했다. 미 국무부는 30일 스티브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방한 결과라며 ‘남북협력에서의 유엔제재 준수’ 등 대북정책을 조율할 워킹그룹 구성을 발표했다. 최근 비핵화와 남북관계 개선의 속도를 놓고 한미 간 불협화음이 불거졌던 점을 감안하면 시스템을 통한 대북정책 조율은 바람직하다.

북미 협상이 다시 교착된 사이 한미는 대북제재 완화를 놓고 아슬아슬한 신경전을 벌여 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관계 발전을 통한 비핵화 견인을 위해 유럽 순방 내내 대북제재 완화를 주장했고, 통일부는 제재 예외를 요구하며 철도ㆍ도로 연결 착공식과 산림 협력을 밀어붙였다. 하지만 그때마다 트럼프 행정부는 대북제재 유지 원칙을 강조하며 사실상 속도 조절을 주문해 왔다. 비건 대표가 방한 기간 중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 등 이른바 ‘외교안보 빅4’를 잇따라 만난 것도 문재인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 드라이브에 제동을 걸기 위한 목적이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수직적 관계가 아닌 이상 한미동맹 사이에도 이견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좌우할 비핵화 문제는 한미동맹을 배제한 채 ‘우리 민족끼리’ 해결할 수 없다. 더구나 미국 동의 없이는 개성공단 정상화 및 철도ㆍ도로 연결 등 남북협력 사업에서 속도를 내기 어려운 구조다. 그렇다면 남북 간 협력사업을 한미가 사전에 논의하는 워킹그룹을 불필요한 오해를 불식시키는 통로로 활용하는 게 오히려 현명하다. 외교관계는 무엇보다 樽俎折衝 할 수 있는 智惠 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번 워킹그룹은 의견 차이가 동맹 간 파열음으로 번지지 않도록 원만한 운용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