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평화 체제론의 주장

우리 사회 통일담론에서 자주 등장하는 주장 중에 평화체제론이 있다.

평화라는 용어는 좋은 의미를 가진 용어이기 때문에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하여야 한다는 주장은 많은 국민에게 쉽게 공감을 줄 수 있는 주장이다. 그래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깊이 따져보지 않고 평화체제론에 찬성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것은 큰 잘못이다.

우리나라에서 평화체제론을 가장 정리된 형태로 세련되게 주장하는 지식인 집단이 ‘한반도평화포럼(공동대표 임동원, 백낙청)’ 멤버들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내용은 비교적 간단하다. 우리가 지금 할 일은 현재의 북한 체제를 그대로 두고 지금의 휴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자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당사자들이 모여 종전선언, 즉 평화선언을 하고 잠정협정을 맺은 후 협상을 진전시켜 평화협정을 맺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평화협정 당사자가 되어야 하는가? 휴전협정의 당사자가 미국과 중국 그리고 북한이니 미국과 북한이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를 물으면 이들은 북한이 핵을 개발하는 주된 이유는 미국이 북한에 대하여 적대정책을 고집함으로써 북한이 안보에 불안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이 체제의 안전을 느껴 북핵을 포기 하도록 하려면 북미 간에 평화협정이 반드시 체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백낙청 선생 같은 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북미간의 평화협정만으로는 부족하고 남한과 북한이 국가연합의 단계로 들어가 서로 교류·협력하기로 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 북한이 비로소 체제의 안전을 확실 하게 느낄 수 있어 핵포기의 가능성이 열린다는 이야기이다.

여하튼 이분들이 생각하는 이 시대 한반도의 과제는 평화정착과 남북공동번영이다. 한마디로 평화공존이다. 평화공존을 위하여 북한과 미국이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한반도 문제가 풀리기 시작한다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주장은 사실은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북한이 오래 전부터 주장해온 내용과 흡사하다.

1956년에는 남한과 북한이 평화 협정을 맺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1974년부터 북한과 미국이 평화협정을 맺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 이후 기회만 있으면 북한은 미국에게 북한에 대한 적대정책을 끝내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라고 목소리를 높여 왔다.

2000년에 들어와서도 북한은 한 결의서에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그리고 통일에 가장 큰 장애물인 남조선 강점 미군은 지체 없이 철수해야 한다(2005년 8월 13일, 14일 평양 인민문화궁전 결의 서한)”고 주장한 적도 있다.

또한 최근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에서도 정전협정 백지화의 책임은 미국과 한국에 있으며,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을 철회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한반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는 것은 항구적 평화실현을 위한 초미의 과제”라고 주장하고 있다.(《노동신문》, 2013년 7월 19일)

남한에서는 앞에서 이야기한 한반도평화포럼의 백낙청 선생 등이 주장 하고 있고, 또한 6·15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나 한국진보연대 등에서도 유사한 주장을 하고 있다. 2013년 대통령선거 때 문재인 후보가 제시한 통일정책도 기본적으로는 이 평화체제론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2. 평화 체제론의 목적

그렇다면 북한은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평화체제론을 주장해왔는가?

우선 한반도에서 진정으로 평화체제를 구축하려면 당연히 남북한의 대결 구도가 해소되어야 한다. 그리고 북미와 북일 관계가 정상화되어야 한다. 한반도와 한반도를 둘러싼 나라간의 국교정상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 두 가지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가 본격화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그 과정에서 몇 가지 근본적인 문제가 등장한다.

① 주한미군의 철수 또는 지위 변경 문제가 등장한다. 평화협정을 체결 하는 마당에 주한미군의 존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② 유엔사 해체 문제 그리고 전시작전통제권의 환수 문제가 등장한다. 평화의 시대가 열리는데 무슨 유엔사인가?

③ 정전협정에 근거를 두고 있는 북방한계선(NLL) 문제가 다시 등장한다. 북한은 반드시 재확정하자고 나올 것이다.

④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가 등장한다. 한반도에서 평화체제가 구축되었는데 국가보안법이 존재해야 하는가? 이제는 공산주의도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더 나아가 ⑤ 국정원의 해체문제가 등장할 것이다. 아니 북한은 분명히 이러한 문제들을 모두 들고 나올 것이다.

그러면서 북한은 평화를 위한 대대적인 경제지원을 남한이 해야 한다고 요구할 것이다.

북한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협상기구와 협상 과정을 활용하여 한미동맹의 해체와 주한미군의 철수, 그리고 국가보안법 폐지와 국가정보원의 해체를 끊임없이 의제로 올려놓고, 미국과 한국의 양보를 요구할 것이다.

그리고 북한은 평화체제 논의를 진행시키면서 곧 남북간의 국가 연합을 주장하기 시작할 것이다. 앞의 한반도평화포럼에서 주장하는 소위 2013체제의 핵심의제가 바로 평화체제 구축과 남북연합 건설이었다.

왜 두 가지가 함께 논의되어야 하는가?

그 이유를 백낙청 선생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북한이 완전히 비핵화에 동의하려면 평화체제 구축, 북미수교 그리고 대규모 경제원조를 하여도 남한의 존재자체가 북에는 위협으로 남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한반도의 재통합 과정을 비교적 안정적으로 관리할 국가연합이라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래야 북은 비핵화의 결단을 내리고 자체 개혁의 모험을 감행할-비록 완전히 안심되지는 않더라도-여건이 그나마 충족되는 것이다.”

‘국가연합’을 만들어 북한을 대대적으로 지원하게 되면 그다음 단계로 분명 ‘국가연방’으로 나아가자고 주장할 것이다. 이미 6·15공동선언 제2 조에서 국가연합은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 같다고 합의했으니, 6·15공동 선언을 지키라고 주장할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협상을 통하여 북한은 주한미군의 문제, 국가보안법의 문제, 대대적인 북한에의 경제지원 문제 등을 끝없이 제기하겠지만, 막상 핵 포기의 문제 등은 가능한 뒤로 돌릴 것이다. 지루한 협상을 통하여 얻을 것만 얻고 줄 것은 주지 않는 것이 전형적인 북한의 협상 전략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협상목표는 진정한 평화체제 구축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 그래서 핵을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다. 사실은 남한을 그리고 주한미군을 흔드는 것이 목표이다.

북한 주도의 흡수통일에 더욱 유리한 여건을 만드는 것이 목표로 보인다.

결국은 북한이 평화체제론을 주장하는 목표는 세 가지라고 보아야 한다.

첫째는 북한 체제 유지이다. 북한의 붕괴를 막는 것이다. 협상국면을 만들어 유엔제재 등을 풀고 경제적 지원을 받고 핵개발을 위한 시간을 버는 데 있다.

둘째는 북한의 적화통일 전략의 한 축인 ‘대미평화전략’에 활용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는 남한 사회를 분열시켜-남남갈등을 유발하여-북한의 적화통일 전략의 또 다른 한 축인 ‘대남혁명전략’에 활용하려는 데 있다.

류 근 찬

‘통일이 답이다’국민운동본부 상임고문

제17대, 18대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