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전쟁초기에 독일은 승전을 구가했지만 미국과 영국, 프랑스 그리고 소련 등의 공세에 밀려 독일은 결국 항복하고 만다.

패전 후 독일은 자본주의 국가인 미국, 영국, 프랑스가 통치하는 서독과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이 통치하는 동독으로 양분되게 된다.

동독과 서독은 남북한이 정부를 수립한 해와 같은 1948년에 각각 정부를 세운다.

그로부터 40여년 만에 동서독은 하나의 독일로 통일됐으나 남북한은 여전히 남북으로 나뉜 지 70성상이 지났지만 분단된 채로 있으면서 통일을 갈망하고 있다.

독일 통일이 한반도에 주는 핵심 메시지는 교류 협력의 중요성이다.

서독은 분단 직후부터 40여년에 걸쳐 꾸준한 접촉과 교류 협력을 이어나갔고, 특히 양 독일은 주민들의 자유방문과 언론인들의 상호교류를 허용했는가 하면, 서독이 동독에 많은 경제적 지원을 함으로써 동독의 체제 변화와 개방을 유도해갔다.

1989년 초부터 동독 시민들이 아래로부터 반체제 시위를 격화시키면서 같은 해 11월 9일 마침내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동독 공산당 체제는 붕괴됐다.

그리고 1990년 동독 내에서 처음으로 자유선거를 통해 의회와 임시 정부를 구성하고, 여기에서 서독과의 조건 없는 통일을 실행했다.

이런 독일 통일사례는 여전히 우리의 갈 길을 가르쳐주고 있다.

독일의 분단과정과 한국의 분단과정은 거의 모든 면에서 다르다.

그래서 독일통일을 우리가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되나 하는 것도 보는 각도에 따라 매우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독일과 한국은 국가가 형성되는 과정도, 국민성도, 살아온 환경도 다르다.

따라서 통일에 접근하는 방법도 다를 수밖에 없다.

때문에 통일을 위한 우리의 노력이나 추진과정, 그리고 그 결과는 독일 통일과 닮은 점이 전혀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독일이 통일된 지 30년이 지난 지금껏 독일 통일 타령을 하고 있다.

물론 독일 통일에서 배울게 없다는 건 아니다. 독일 통일이야말로 우리가 따라가고 싶은 통일 모델이자 우리에게 갈 길을 가르쳐주고 있다.

그러나 말로만 독일통일을 배울 것이 아니라 이제는 행동이 뒷받침되는 통일 논의가 필요한 때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우리는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굳건히 지켜나가는 것에 최대 국가목표를두면서 장기간에 걸쳐 남북한의 정치, 경제, 사회적 동조(alignment)를 차분히 이루어 나갈 수 있도록 통일 정책의 큰 줄기를 재정비하자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유효한 것은 안보일 것이고, 가장 유효한 버팀목은 바로 한미동맹일 것이다.

세계최대 강국인 미국이 우리의 동맹국이라는 것은 한반도 통일노력에 크나큰 버팀목이자 지원군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한미동맹이 그냥 저절로 굴러 들어온 것은 아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혜안으로 가져온 것이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미 제국주의’라는 일부 견해에는 동의할 수 없다. 백번을 양보하더라도 미국은 적어도 우리 대한민국을 정치적으로 지배하려는, 예컨대 일본의 제국주의와 같은 정책을 가지고 있지 않다.

김일성의 남침야욕을 분쇄해 독립국가의 기초를 닦고 박정희 대통령시절 대한민국이 세계 경제사에 유례없었던 30년 간 연평균 8%의 경이로운 경제발전을 이룩한 것도 한미동맹이라는 안보버팀목에 크게 힘입은 것이다.

미국은 경제원조도 했고 우리는 그 돈으로 학교를 짓고 해서 해방직후 80%이상이었던 문맹률을 10~15년 만에 10%이하로 떨어뜨렸다.

교육성공은 후에 경제성공으로 이어졌다. 이런 미국을 어떤 형태든 멀리하려는 시도가 있다면 이는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것이다.

사회 일각에서는 독일의 1989-1990년 기간에만 초점을 맞춰 동독이 무너진 것처럼 북한도 곧 무너져 한반도 통일이 도래할 것이라고 인식하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북한변화를 위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퍼부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통일로 가는 북한의 변화는 기다리기만 한다고 해서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다.

남과 북에는 핵과 전쟁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평화와 공존이 불가능한 적대 관계다. 통일하지 않을 경우 결국 남한이 계속 비교 당하며 인구로 보나 국토면적으로 보나 강대국으로의 도약이 가능하지 않다.

결국 통일하지 않으면 통일에 관련된 한국 내 이념갈등과 사회갈등의 지속은 불가피할 것이고 민족역사에서 ‘죄 지은세대’로 평가될 것이다.

독일은 통일 후에도 길고 고통스런 통합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독일은 통일된 지 30여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경제 통합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심리적, 문화적 통합 역시 아직 갈 길이 멀다. 40년간의 분단 격차가 20년만에 치유되기 힘들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분단이 길어질수록 치유기간도 더욱 길어지기 마련이다. 특히 남북한은 국가 형태의 차이, 엄청난 경제적 가치, 첨예한 군사적 대치, 사상과 이념의 차이로 인해 과거 동서독보다 훨씬 더 많은 이질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남북한은 동서독의 경우보다 훨씬 더 많은 ‘교류와 협력’을 필요로 한다.

독일의 교류협력으로부터 우리가 배울 점은 경제 교류가 그 어떤 군사적 수단보다도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무기라는 것이다.

NATO는 총 한발 쏘지 않고 오직 교류협력을 통해 동구권의 공산주의 체제를 무너뜨렸다.

총보다 경제교류가, 그리고 사회문화적 접촉면이 넓어질수록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사례라고 하겠다.

동서독의 교류‧협력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었던 이유는 안보문제가 양 독 간 교류‧협력에 큰 걸림돌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독은 서독에 대해 군사적 도발은 물론 국제사회를 대상으로 안보위협을 가한 적이 없다. 그래서 동서독 간의 교류‧협력은 외부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고 원만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 남북의 교류‧협력관계는 북한의 핵문제 등으로 거의 전 분야에 걸쳐 경색돼있기 때문에 김대중‧노무현 정부 이후의 대북포용 정책과 대북 협력 정책은 무력화돼있다.

따라서 북한 핵문제와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 완화 등 한반도 안보문제 해결이 선행되지 않고서는 남북한 교류‧협력분야에 진전이 있길 기대하는 것은 난망인 상황이다.

북한 주민들은 남한과의 교류 협력이 진행될수록 남한 체제가 훨씬 우월하고 살만한 체제라는 사실을 깨닫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에 따라 모순으로 범벅이 된 북한 체제로부터 북한 주민들이 해방되길 원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남북 간의 교류‧협력은 북한경제가 중국에 의존하는 것을 막고 민족 경제공동체로 합류시키는 훌륭한 수단이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베트남이나 예멘처럼 전쟁을 치르고서라도 통일만 되면 된다는 단순한 ‘재통일(Reunification)’이 아니라 교류협력을 바탕으로 튼튼해진 토대위에 이른바 ‘New Unification’이랄 수 있는 ‘평화통일’을 창조해 나간다는 현실적 인식으로 통일문제에 접근해야 할 때다.

류 근찬

통일이답이다국민운동본부 상임고문

제 17,18대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