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정원 직원 댓글 의혹 사건에 대해 중간수사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는 수서경찰서장

<사슴앓이>와 보도자료

‘사슴앓이’와 국민을 바보로 보나?

경찰은 대체 뭘, 누굴 수사한거야?

신문사 수습기자를 보통 <사스마리>라고 한다. 정확히는 수습기간 중 경찰서 출입하는 기자를 지칭하는 말로 경찰의 일어 <'찰(察,さつ:사쯔)>과 빙빙 돈다는 뜻의 <마와리(回り)>, 또는 돌아다닌다의 <회(廻) :마와루>자가 합성된 말로 제대로 된 일본식 발음은 <사쯔마와리>, 또는 <사쯔마와루>가 된다. 이 조어를 쉽게 발음하다보니 사스마리가 된 것이다. 사스마리는 신문사에 입사해 사회부에 소속이 된다. 그리고 밤새 경찰서를 뺑뺑 돌면서 형사들 눈도장을 찍고 신문사 데스크에게 밤새 있었던 사건을 보고 하기도 한다. 물리적으로도 고된 시간이고, 신문 기자들은 이 수습기간을 다 거쳐야 했다.

이 사스마리들의 가장 중요한 일과는 오전 10시와 오후 4시였다. 하루 두 차례 기자회견이나 보도 자료가 나오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밥 먹고 세수할 시간도 제대로 없었지만 하루 두 차례, 오전 10시와 오후 4시엔 꼭 경찰서 기자실에 붙어 있어야 했다. 물론 신문사에 따라 비중을 더 두는 시간은 있다. 석간신문일 경우 오전 10시 기자 회견이 마감시간이 되고 익일 조간일 경운 오후 4시에 주요 기사가 다 나온다. 그래서 경찰서에서도 이 시간을 맞춰 보도 자료를 내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래도 사스마리들은 야간이나 새벽녘에 경찰서를 도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시간에는 주요 범죄자들 구속 소식을 단신으로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일이 일제 압정기 때나 군사 독재 시절에는 시국사범의 구속여부를 알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에 독재에 대한 견제 시간이 될 수도 있었다.

아무튼 신문사 수습 기간 시절 사스마리들은 말할 수 없을 만큼 고달프고 힘겹다. 그래서 이 시기를 버티지 못하는 수습기자들도 꽤 된다. 남녀를 불문하고 ‘못 자고 못 먹고 못 씻는 시간의 연속’으로 늘 피곤에 쩔어지내야 하는 시기였던 것이다. 한 신문사 데스크는 이 시절을 떠올리고 후배들의 고생을 생각하면서 새로 만든 말이 있었다. <사슴앓이>였다. 연음하면 발음이 사스마리가 된다. “사슴같이 여리고 순박한 수습기자들이 아파하는 모습, 앓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사스마리란 말이 일본식 조어이므로 사슴앓이로 순화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대선 후보 3차 토론을 마치고 나온 보도 자료는 관행을 깬 일이었다. 밤 11시에 국정원 요원 컴퓨터에서 문재인 후보 비난 댓글, 게시글 발견할 수 없어... 라는 제목만 있는 보도 자료가 돌았다. 사슴앓이들도 놀랐고 신문사 데스크들도 놀랐다. 이에 대해 표창원 경찰대 교수 자신도 처음 보는 보도 자료였다. 이런 의외의 보도 자료가 돈 것에 대해서 “익일 오전 보도를 노린 자료”였다는 의심이 가는 건 당연한 것이었다. 밤 11시에 보도 자료를 돌리고

다음날 오전 9시 기자 회견을 했다. 내용도 없었다. “임의로 제출된 노트북, 데스크톱에 문재인 후보를 비난했다는 댓글이나 게시글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피곤해도 사슴앓이들은 의혹을 제기했다. 그리고 이곳저곳에서 질문이 터져 나왔다. “왜 관행을 무시한 보도 자료를 돌렸나?”

“수사 결과가 일주일 정도 걸린다고 했는데, 어떻게 만 이틀만에 나올 수 있었나?”

“부실 수사 아닌가?”

“임의 제출된 노트북이나 다른 데스크톱에서 ‘작업’이 됐을 수도 있지 않은가?”

“국정원 요원의 ID가 40개라고 들었는데 조사해 봤나?”

“IP 추적은 있었나?”

사슴앓이들의 질문은 예리했다. 아무리 여리고 순박한 사슴앓이여도 그들도 기자다. 어린이들도 알만한 의혹을 그냥 넘어갈리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수서경찰서 수사과장 대답은 간단했다. 그는 수십 년 사슴앓이들을 대했던 베테랑 과장이었다. 간단한 대답으로 일관하곤 직직 소음을 내는 스피커 소음과 함께 기자회견장을 빠져 나갔다.

“관행도 있지만 워낙 국민 관심이 집중된 사건이어서 곧바로 보도 자료를 돌렸다.”

“전문 수사관 10여 명을 투입해 조기에 끝냈다.”

“부실 수사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제출된 노트북과 데스크톱 외엔 조사할 수 없었다.”

“ID 40개에 대해선 조사하지 않았다.”

“IP 추적은 연장이 필요한 일이어서 불가능했다.”

순박한 사슴앓이가 수사과장을 좇아가며 부르짖는다.

“그럼 대체 뭘 수사한 거예요?”

그 말에 수사과장은 “다 알지 않냐”는 표정으로 씩 웃고 만다. 사슴앓이 눈은 충혈돼 흥분된 상태고 수사과장은 여유 있는 ‘평온한 상태’였다.

▲ 김성수(안팎뉴스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