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국가 예산이 여야의 극한 대치속에 법정 처리시한을 넘긴 가운데 정기국회내 처리여부가 주목된다.

여야는 올해 정기국회가 끝나는 9일을 2차 처리시한으로 잡고 추가협상에 나서기로 했으나 행안부장관 해임건의안 처리변수와 맞물려 진통이 예상된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2014년 국회선진화법 시행이후 예산안 법정 처리시한을 지키지 못한 경우라도 모두 정기국회회기 내에 예산안을 처리했다”며 “이번에도 정기 국회 내에 처리돼야한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 정치에는 오직 극한 대립만 있고 소통과 협치가 실종됐기 때문에 생기는 불명예이자 오명이다.

세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입법기관인 국회의원은 독립된 헌법기관이다.

때문에 국회 내에서의 표결행위는 국회의원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와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 원칙이다.

국회의원이 독립된 헌법기관이라는 점에서 미국이나 한국이 다를 바 없으나 미국과 한국의 정당제도가 달라서 미국에는 공화당이나 민주당의 중앙당이 존재하지 않고 중앙당 역할을 전국위원회가 대신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의회는 당 중심이 아니라 의원 중심으로 바뀌어 있기 때문에 의원이 당론만 따르는, 당론에 구애 받는 거수기가 아니라 의원 개개인이 자유롭게 투표하는, 이른바 크로스보팅 제도가 정착돼있다.

자유투표 혹은 교차투표라고도 불리는 이 제도가 정착되면 국회의원이 소속정당의 당론과는 상관없이 유권자의 태도나 자신의 소신과 판단에 따라 투표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당의 당론이란 것은 당구성원인 의원들의 토론과 타협을 통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당 대표나 당 총재 등 몇 명에 의해 정해지고 의원들은 ‘윗분’의 의견을 묵묵히 따르는 식이다.

크로스보팅의 경우 소속정당의 정책노선과 반대되는 투표를 할 수도 있다. 미국은 의회에서의 투표결과가 선거구의 신문 등에 보도되고 유권자는 이것을 선거 때 판단 자료로 삼기 때문에 국회의원은 선거구 구민의 이익을 당리에 우선시키는 것이 보통이다.

따라서 각 정당이 소속의원에게 당론을 따르도록 구속하기가 사실상 어렵다. 미국의 경우 한해 평균 500~600건의 안건처리에 있어서 10% 가량을 크로스보팅으로 처리하고 있다.

필자가 이 글 앞머리에서 이런 설명을 하는 것은 KBS 워싱턴 특파원시절, 미 상원 본회의장 안에서 목도한 충격적인 사건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필자는 1989년 8월 29일자로 워싱턴 특파원으로 부임했다. 그 이듬해인 1990년 8월 2일 사담후세인이 통치하던 이라크가 인접해있는 쿠웨이트에 쳐들어갔다.

쿠웨이트가 과거 이라크의 영토였다는 이유로 이라크가 이웃 왕국인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미국과 영국 사우디아라비아 등 30여 개국이 UN 결의와 미국주도로 다국적군을 결성해 쿠웨이트를 지원함으로써 1차 걸프전이 시작됐다.

곧 전면전이 시작될 것 같았으나 해를 넘겼다. 1991년 1월 16일 드디어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에 다국적군의 공습이 시작됐다.

그날 백악관 정오 브리핑에서 백악관 대변인은 서방 언론인들은 오늘 중 바그다드에서 모두 철수할 필요가 있다고 경고했다.

백악관 대변인의 경고로 “드디어 공습이 오늘이구나”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미국 동부시각으로 오후 6시 30분 일제히 저녁뉴스를 시작하는 ABC, NBC, CBS 등 지상파 3개 방송 채널을 돌려가며 뉴스를 모니터하기 시작했다.

3개 방송의 머리기사는 죄다 이라크에 대한 공습이 시작됐다는 내용이었다. 1차 걸프전이 시작된 것이다.

전쟁개시 열흘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 미 지상군 투입이 필요해졌다. 당시 미 의회는 하원은 부시대통령의 소속 정당인 공화당이 다수당이었으나 상원은 민주당이 다수당이었다.

미국이 지상군을 투입하기 위해서는 상,하양원의 동의가 필요한 사안이었다.

하원은 문제없이 지상군 투입안을 통과시켰으나 문제는 상원이었다.

지상군 파병 동의안이 하원에서 상원으로 넘어온 이후, 1991년 1월 20일 드디어 상원 표결이 있던 날 제일 좌불안석인 사람은 공화당 출신 부시 대통령(아버지 부시)이었다.

상원이 끝까지 동의안을 반대하면 미국은 다 이겨놓은 걸프전에 최종적으로 승전고를 울릴 수 없기 때문이었다.

상원의장(부통령당연직)이 개회를 선언하고 난 뒤 앨 고어 민주당 원내대표가 발언대를 향해 천천히 걸어나왔다.

발언석에 도착한 고어 원내대표는 “존경하는 의원여러분! 우리가 여기서 오늘 어떤 결정을 하느냐에 따라 사담후세인이 영원히 제거되느냐의 여부가 결정됩니다. 지금 다국적군은 이라크에 지상군을 투입해 지루하게 계속돼온 걸프전을 승리로 끝내야할 시점입니다. 그것이 미국의 국가 이익이기도 합니다. 지상군파견을 반대하는 것이 우리 민주당의 입장입니다. 그러나 저는 어제까지 이틀 동안 제 지역구인 테네시 주에서 여론조사를 실시해본 결과 80% 이상의 유권자가 지상군은 파견돼야 한다는 것에 지지를 보냈음을 확인했습니다. 저는 민주당 원내대표이지만 오늘 표결에서 당 입장과는 반대로 지상군 파견에 찬성하겠습니다. 지역주민들의 의견에 따르는 투표를 해야 하는 것이 제 책임이자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이 수적으로 우세한 의원들을 동원해 지상군 파견을 반대하는 민주당 당론을 밀어붙일 수도 있었고, 그랬으면 미국은 걸프전에서 승전국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고어 원내대표가 물꼬를 텄다. 미국대통령은 백악관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Oval Office)로 여야중진들을 초치해 여야협조가 필요한 국정과제를 설명하고 협력을 요청하는 협치노력에 전력을 다하는 것이 관례다.

아마 고어 원내대표도 국익과 주민여론이라는 점을 강조하긴 했지만 그건 명분이었을 것이고 여권인 공화당의 이런 협치와 소통노력에 설득 당했을 가능성이 크다.

고어 대표가 발언을 마치자 공화당 의원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오는 등 웅성거렸고 민주당 의원석은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다. 고어는 동료의원들에게도 귀 뜸하지 않은 게 분명했다.

미국 대통령 중에서도 오바마 대통령은 여야가 부딪힐 때 마다 한밤중에도 전화통을 놓지 않고 의회지도부를 설득해온 협치노력으로 유명하다.

고어 원내대표 덕에 민주당의원들이 지상군 파견에 찬성하는 쪽으로 표를 던져 상원에서도 하원과 마찬가지로 미 지상군 파견동의안이 통과됐다.

미 지상군은 2월 24일 걸프전에 투입됐고 나흘 뒤인 2월 28일 10시를 기해 지상전 종결이 선언됐다. 다국적군의 승리였다.

고어의 느닷없는 행동은 신선한 충격이라는 언론의 평가를 받았고 미국국익을 위해 내린 용단, 다수당이 밀어붙일 수도 있었지만 ‘협치’의 길로 나서 걸프전에서 승리의 쾌거를 이뤘다면서 국민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미국의회도 여소야대인 경우가 많지만 오랜 민주주의의 학습효과로 다수당이 정부와 소수당이긴 하지만 여당 편을 들어줌으로써 미국 국익의 성취를 만끽한 경험을 갖고 있고 그들은 이걸 다수당과 소수당간의 협치의 성과라는 자부를 갖고 있다.

여당이 국회에서 제1당이긴 하지만 과반수 의석이 아니기 때문에 행정부가 국정을 펴나가는데 야당과의 협치라는 고비를 슬기롭게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때문에 협치와 소통은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다. 협치는 맨입으로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야당을 설득하는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180석의 거대 여당의원석에서 단 한사람의 소신으로는 바뀔 것이 없다. 한국정치는 지금 사태의 본질보다 곁가지에 집착하고 있다.

이른바 ‘쪽수’와 힘으로 밀어붙이며 국정발목잡기에만 올인하는 야권, 그사이에 여권과의 대화와 타협은 보이지 않는다.

현재 우리 국회의 거대 야당은 마음만 먹으면 못할 일이 없는 정치세력이 됐다. 여든 야든 우리 국회의원들은 더 이상 소신 대신 ‘거수기’로 전락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이지 말아야한다. 더 당당해지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그래야 협치라는 것이 가능해진다.

국회의원뿐 아니라 대통령도 남은 임기동안 진보, 보수 구분 없이 활발한 소통을 기대한다.

우리 국민들이 언제까지 국회에서 다수당이 다수결이라는 이름을 앞세워 힘으로 밀어붙이면서 소수당에 “순응하는 자세로‘협조’하라”고 겁박하는 모습을 봐야만 하나?

하루 빨리 우리 정치가 실종된 협치를 되찾는 모습을 보고 싶다. 소통과 협치야말로 정의이고 대한민국 정치를 구하는 답이다.

류근찬

통일이답이다국민운동본부 상임고문

제 17대, 18대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