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북한 김정은이 작심하고 ‘영토 평정’ ‘제1 주적’ 등 ‘전쟁’ 단어를 입에 달고 다니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고도로 계산된 전략적 발언임이 분명하다.

이와 관련해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김정은이 “진짜 전쟁하려면 좋은 미사일을 전량 수출하겠는가”라고 했다. 김정은의 ‘전쟁’ 발언을 “공갈 위협에 의한 심리전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라고 분석했다.

신 장관은 그 근거로 북한이 러시아에 각종 포탄 수백만 발과 신형미사일을 수출하는 것을 들었다.

김정은은 어떤 이유로 대한민국과 핵 전면전이라도 벌일 것처럼 위협하면서 러시아에 무기를 수출하는 ‘이율배반적’이고 모순적 행동을 보이는 것일까?

북한이 연초 서해 북방한계선(NLL) 해상 완충 구역에 포 사격으로 도발하기에 앞서 김정은은 지난해 12월 말에 열린 당 전원회의에서 ‘대남노선의 근본적인 전환’을 천명했다.

그러나 그건 단순한 심리전 차원이 아니었다. 북한은 지난 28일 오전 함경남도 신포시 인근 해상에서 순항미사일 여러 발을 쏴 올렸다.

이처럼 무기개발에 집중하는 한 민생 발전은 ‘공염불’이 될 것이다. 인민은 굶어 죽어 나가는 판에 디룩디룩 살만 찌운 거구를 이끌고 핵, 핵, 거리는 김정은은 “남한의 대결 책동으로 남북관계가 동족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관계로 고착됐다”고 하면서 남한을 더는 화해와 협력을 통한 통일의 상대로 간주하지 않겠다는 나사 빠진 생각을 드러냈다.

뻔한 꼼수가 숨어있다. 미사일 발사로 한반도의 긴장 수위를 한층 더 끌어올리려는 꼼수다.

북한 김정은은 한국의 4월 총선이 다가오자 북한의 도발 간격이 짧아지고 종류도 다양해지고 있는 듯 보이지만 반복되는 미사일 도발 위협으로 그 무엇도 손에 쥘 수가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명심해야 할 것이다.

김정은은 한발 더 나아가 최고인민회의 시정 연설에서 북한 “헌법에 명기된 자주‧평화통일‧민족대단결이라는 표현이 이제는 삭제돼야 한다”며 “그러나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대한민국을 완전히 점령‧평정‧수복하고 공화국 영역에 포함하는 문제를 헌법에 반영할 것”을 지시했다.

김정은의 이런 발언을 곱씹어보면 그의 발언은 이중구조로 돼 있다.

하나는 한국을 집어먹겠다는 허세를 더 이상 부리지 않겠으나 만약 한국이 그것을 북한의 열세로 보고 “전쟁을 일으키는 경우 단호히 대처해 한국을 초토화하겠다는 김일성, 김정일로 내려오던 구태의연한 무력 통일정책을 잠꼬대처럼 되뇌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도 두 갈래로 대처해야 한다.

하나는 북한이 이제 비로소 세상 돌아가는 형세를 긍정하고 더 이상 한국을 침략하는 등의 허장성세를 부리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북한이 ‘초토화’ ‘대사변’ ‘주적’ 등의 표현을 쓰는 협박에도 대응을 늦추지 않는 것이다.

지난 수십 년 세월 동안 우리는 북한의 양동작전에 시달려오면서 김정은의 말 몇 마디에 홀려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학습효과를 터득한 지 오래다.

그런데 최근 김정은은 남반부를 평정하려는 군대의 보조 역량으로 대남 사업 부문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는데 이는 그동안 수사적이나마 존재했던 대남 화해‧협력 전술을 폐기하라는 지시이자, 이면 전략인 대남 무력통일노선을 노골화한 것이다.

김정은은 대남노선전환의 이유로 세 가지를 거론했다.

⓵ 남한이 일관되게 흡수통일을 추구한다며 한국의 대북정책을 비난했다.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 개 제도에 기초한 통일노선’으로 지지받았으나 남한의 방해로 결실을 거두지 못했다는 논리를 폈다. 김정은은 남한의 역대 대북정책은 죄다 북한 정권붕괴를 추구했다면서 “괴뢰정권이 10여 차례 바뀌었지만,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의한 통일기조는 변함없다는 점이 산 증거”라고 주장했다. 헌법에 ‘대한민국의 영토는 조선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버젓이 명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북한 정권을 붕괴시키겠다는 야망은 민주든, 보수든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다.

⓶ 남한사회의 성격을 “미국의 식민지 속국에 불과하다”고 하면서 남한을 대화상대가 될 수 없다고 했다.

⓷ 국격과 지위를 볼 때 남한이 통일논의의 상대방이 아니라고도 했다.

북한은 핵 강국이고 국제질서를 좌우하는 전략국가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김정은의 입장에서 보면 안보는 핵무기를 통해 달성됐지만, 경제는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김정은은 2017년 6차 핵실험에 성공한 후 핵 무력이 완성됐다고 선언하고 그 이듬해 국가발전 전략을 사회주의의 경제건설 총력집중노선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본질적으로 지도자 김정은이 자력갱생을 고집하는 한 누가 맡아도 현재 북한의 경제정책은 성공할 리 만무한 것이다.

대내외 곤경이 더욱 심각해진 점이 적나라하게 포함돼있다.

김정은은 북한 헌법에서 통일개념을 완전하게 제거하라고 지시했고, 북한은 평양시 낙랑구역에 있는 ’조국 통일 3대 헌장 기념탑을 철거했다. 북한의 대남관계 재평가는 세밀하게 계산된 전략적 변화다.

김정은의 말을 빌리자면 ‘쓰라린 남북관계사가 주는 최종 결론’이다. 북한 매체가 노동당 전원회의를 “역사적인 회의였다”고 보도한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

역설적으로 남북한 데탕트가 실패로 돌아간 것은 윤석열 정부의 강경한 대북정책이라기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더 큰 요인으로 작용했을지 모른다.

남북통일을 향한 끈질긴 노력과 통 큰 대북정책 때문에 남북통일이 가망 없는 일임을 북한이 느끼게 했을 수 있다.

통일을 간절하게 원했던 북한 주민은 이번 발표에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 통일이 되면 삶이 나아지길 원했던 주민들은 김정은의 발표로 그 꿈이 산산조각 났고, 이는 김정은의 국내 지지기반에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그러면 김정은의 향후 선택지는 무엇일까. 존 에버라드 전 평양주재 영국대사는 북한의 대남노선 변경이 남한의 경제지원을 얻어낼 목적에서 핵무기 사용을 위한 사전 조치일 수도 있다는 것은 우려스럽다고 했다. 같은 민족을 대상으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곤란할 수 있는데 한국을 주적으로 명시함으로써 김정은은 그 장애물을 제거했다.

어떤 선택을 하던 올해 북한의 폭력적 도발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이것은 한국의 대응을 시험대에 올릴 것이다.

이렇게 되면 긴장이 격화하고 미국‧일본 또는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일종의 뇌물 형태로 긴장을 완화하려 할 것이다.

김정은의 강경한 언사 이면에는 또 다른 선택지가 숨어있을 수 있다. 북한이 대한민국을 국가로 인정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혹시 김정은이 통일이 아닌 ‘두 개의 국가 해법’을 개발해 공식적인 남북한 공존을 모색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올해는 격동의 한 해가 될 것이 분명하다. 김정은이 폭력이 아닌 평화를 선택하길 바란다.

류근찬

통일이답이다국민운동본부 상임고문

제 17대, 18대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