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민주주의의 첫 시험대로 꼽혔던 대만 총통 선거에서 라이 칭 더 민진당 후보가 당선됐다.

라이 칭 더는 반중 성향인 사람이다. 라이 당선자가 말한 대로 “대만이 민주 진영의 첫 번째 승리를 가져왔다”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이 라이 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해 군사적, 경제적 위협은 물론 각종 가짜뉴스를 유포하며 대만 민주주의를 흔들었다.

국제선거제도재단(IFES)에 따르면 올해 2024년 세계는 2개의 전쟁과 거의 50개국에 이르는(정확히 47개국) 선거로 갈등의 몸살을 앓는다.

전 세계 인구의 40%, 20억 명이 참여하는 선거가 치러지는 말 그대로 ‘지구촌 선거의 해다.

지구촌 주민들이 생전 겪을 가장 크고 중요한 민주주의 행사가 몰린 해라며 앞으로 수십 년간 세계 향방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과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이 새해로 이월돼 살상과 파괴로 치닫고 있다.

선거가 있는 나라는 인도를 비롯해 인도네시아, 멕시코, 남아프리카, 미국, 그리고 유럽 27개국 등이다. 물론 대한민국도 여기에 포함된다.

선진국이든 개도국이든 간에 선거는 현상타파적이다. 현실에 대한 불만과 불평이 표출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선거판은 항상 대립적이고 분열적이다. 이틈을 노린 기회주의나 인기 영합주의가 득세할 소지가 높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세계는 극도의 불안을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인종과 종교 등으로 갈등 구조가 심화될 것이다.

실제 올해 각국 선거는 민주주의가 가장 이상적인 정치체제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입증할지, 아니면 민주주의가 허울만 남은 채 중우정치로 몰락할지를 보여줄 가늠자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만 선거라는 첫판은 민주주의의 승리로 끝났으나 안도하기는 좀 이르다.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칠 선거, 올해 최대 하이라이트로 꼽히고 있는 선거는 역시 미국의 대통령선거이다.

기소 4건과 범죄사실 90여 개가 걸려있는데도 트럼프 후보는 사퇴는커녕 승승장구하고 있다.

트럼프가 다시 당선되면 대한민국은 경제, 안보 면에서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는 특히 한국에 대한 안보 비용을 과하게 요구하거나 주한미군 철수, 또는 감축을 추진할 것이고 김정은과는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려 할 것이다.

미국 대선도 이미 몇 가지 변수에 요동치고 있다. 미국 정치권은 중국과 러시아, 북한 등 권위주의 국가들이 대선에 개입하기 위해 각종 거짓 정보를 흘리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그뿐인가. 트럼프 전 대통령은 1.6 의회 난입사태로 수감된 지지자들을 ‘인질’이라 부르고, 자신에 대한 수사를 마녀사냥이라며 극단주의를 조장하고 있는 형편이다.

전문가들은 미국 대통령선거를 올해 최대 위험으로 꼽으며 “전례가 없을 정도로 문제가 많은 미국선거가 세계의 안보, 안정, 경제전망에 그 어느 것 보다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특히 정치 양극화로 누가 이기든 선거 결과를 수용하지 않아 미국 사회가 극도의 혼란에 휘말리고 그렇게 되면 국정 마비가 불가피할 것이고 미국의 적 들은 이런 사태를 반길 것이라고 경고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트럼프의 재선은 세계지도에서 미국의 역할을 다르게 그려갈 것이기 때문에 어쩌면 2024년 세게 최대이단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경고는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는 우리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이 때문에 어느 나라 선거도 오는 4월에 치러질 한국의 국회의원 선거보다 결코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한국 정치판은 당면한 치명적 상황에 대한 인식도 없어 보이고 이 엄중한 국제 파고에서 살아나갈 연명책에 대한 정책적 공방도 없다.

예컨대 저출생 대책이라든가 이기적 경제 흐름, 자원 외교의 한계, 북한과의 무력적 대립 문제 등에 대한 지적이나 토론 등은 아무 데서도 보이지 않는다.

김정은은 얼마 전 남북은 더 이상 동족 관계가 아니라며 한국에 핵 무력을 사용할 준비가 돼 있다는 식으로 협박하고 나섰다.

그런 판에 오로지 관심이고 초점은 대통령 부인에 대한 특검 여부이고 공천이고 비대위 구성이며 정객들의 이합집산뿐이니 이러고서도 국가를 위하고 국민을 위하는 정치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걱정하는 이유는 이번 총선이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할지의 여부를 증명할 가늠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22대 총선은 초반부터 프레임 대결도 치열하다. ‘정권 심판’을 내세운 야당이 한 걸음 더 나아가 ‘윤석열 검찰 독재 정권 심판’을 주장하고 있는 가운데, 국민의힘도 ‘국정안정’이라는 수동적인 프레임에서 ‘운동권 특권정치청산’이라는 공세적인 프레임을 제시하고 나섰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국민 위에 군림하고 가르치려 드는 운동권 특권정치를 청산해야 한다며 야당을 향해 날을 세우고 있다.

대폭적인 공천 물갈이가 예상되고 있지만, 국민의힘은 여전히 수도권, 특히 경기도에서 인물난을 겪고 있는 모습이다. 

민주당도 비명계 의원 중 상당수가 경기도 출신인 가운데 인재 영입과 쇄신 공천 의도가 자칫 비명계를 자극해 친명계와의 갈등이 더욱 노골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고대 헬레니즘 문명을 꽃피운 그리스의 어느 역사가는 “민주제는 악이 만연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며 “악인들 사이에는 강력한 유대감이 생겨 국가에 해악을 끼치는 자들이 결탁해 모반을 꾀하게 된다”고 민주주의가 자칫 중우정치로 빠질 위험성이 있음을 갈파했다.

역사도 이런 사례를 수없이 보여줬다. 민주주의가 중우정치에 빠지지 않고 제대로 기능하게 하는 방법을 정치인들은 이미 알고 있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에 정치인이 아닌 유권자들이 나서야 하는 이유는 ‘만연한 악인들 사이의 강력한 유대감’을 깨뜨리기 위함이다.

우리 국민이 투표장에서 의식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처한 시대적 상황과 이것을 살아가는 시대정신이다.

선거가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이제 안다.

마찬가지로 지도자 한 사람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마술사가 아니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류근찬

통일이답이다국민운동본부 상임고문

제 17대, 18대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