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거대 정당의 대표 출신이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는 것은 엄청난 위기에 봉착한 우리 정치 현실을 말한다.

‘양당 패권주의와 비토크라시’에 대한 우리 국민의 피로감은 충분하다.

개혁신당의 등장으로 8년만의 ‘3자 구도 총선’이 가능할 뻔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그리고 제3지대 개혁신당, 이렇게 3자 구도로 치러질 총선을 두어 달 남짓 남겨 놓고 개혁신당이 결국 파국을 맞고 말았다.

새로운미래 이낙연 대표가 이준석 대표의 개혁신당과 합당을 선언하면서 이들은 “거대 양당을 심판하기 위해 새로운 정치세력이 나서야 한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우리의 정치 양극화의 심각성을 고려하면 ‘제3지대 정치는 반드시 필요하다.

당장 실질적인 단일정책을 내놓기 어려운 만큼 양극화 해소를 위한 제도적 대안을 내놓는다면 많은 국민의 공감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개혁신당의 여론 환경이 나쁘지 않다는 얘기다. 여러 군데서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국민의힘과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다는 응답이 30%를 넘고 있다.

비례용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위성정당을 만들고 있는 거대 양당과 차별화도 시도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불안감을 떨쳐버리기는 다소 힘들다.

그동안 양당 극한 정쟁의 폐해에 공감한 유권자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11일 만의 이준석과 이낙연의 결별은 이런 유권자들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한국 정당사에 전례가 없을 기록일 것이다. 개혁 신당 사태는 단순히 일부 세력의 이탈을 넘어 3지대 빅텐트의 해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개혁을 기치로 내건 이들이 짧은 동거기간 보여준 것은 많은 사람이 비판하는 것처럼 꼼수뿐이었다라고 폄훼하기는 좀 그렇다.

물론 몇 가지 경우는 그런 비판을 받아도 싸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부동산 문제로 민주당에서 제명된 의원을 국고 보조금 지급기준일 하루 전 입당시켰다. 현역 의원이 5명 이상이면 국고 보조금이 크게 오른다.

개혁신당엔 당이 깨지는 바람에 이제 현역 의원이 4명만 남게 돼 6억6000만 원의 국고보조금 지급 근거가 사라졌으나 국고보조금은 반환할 법적 의무규정이 없다.

형법을 적용한다면 ‘보조금 사기’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 11일 동안 개혁신당 공동대표로 활동한 이낙연 대표가 실제로는 개혁신당에 입당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니 기가 막힌다.

아무튼 개혁신당은 이번 사태로 합당은 파탄났으나 국가보조금 6억은 남은 셈이다. 다른 세력이 합당했을 때 ‘서로 재산을 노린 위장결혼’ 얘기가 나왔을 정도로 예견된 일이긴 하지만, 결국 개혁신당 사태야말로 야합과 꼼수 정치만 보여준 저질 정치코미디로 막을 내렸다는 평가에 관계자들은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특히 부동산 문제로 민주당에서 제명됐던 양정숙 의원(비례대표)의 경우는 보조금 사기, 정치 분식회계라는 등의 비아냥이 이상하지도 않다.

이준석 대표는 합당 당시 당명과 당색, 사무총장 등을 자신이 창당한 개혁신당 몫으로 하는 대신 총괄선대위원장은 이낙연 대표로 했다.

보수와 진보 두 진영 이 이전투구를 벌였던 지난 대통령 선거는 우리 정치를 크게 후퇴시켰다.

이후 국회에서는 정치라기보다 선거의 연장전이 벌어져왔다. 대화와 타협이 실종된 상황에서 거대 야당의 입법권력과 정부 여당의 행정 권력이 사사건건 충돌했다.

양당의 극한 대결속에 민생에 반드시 필요한 입법은 무산됐고, 진영논리가 얽힌 법안은 일방 처리와 거부권의 정면 대치 속에 번번이 무산됐다.

되는 일이 없는 정치판을 우리 국민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 2년 동안이나 지켜봐야 했다. 이번 총선은 이렇게 쓸모없는 정치에 돌파구를 만들어낼 흔치 않은 절호의 기회라는 것이 제3의 정치세력이 필요하다는 국민과 정치권 생각의 근거다.

그 때문에 양당 패권정치의 폐해 틈새를 비집고 나온 3지대로 유권자의 시선이 향했다. 그것을 담아내겠다고 모여든 이들이 ‘빅 텐트’에 시동을 걸었다.

창당을 선언한 뒤로 부진한 성적을 만회하고 이번 총선에 변수를 일으켜 보겠다는 셈법이었다. 그러나 불과 열흘 만에 갈라섬으로써 파탄 났다. 절호의 기회였는데 안타깝고 아까운 일이다.

만약 총선에서 유권자가 제3의 정당에 캐스팅보트 권한을 준다면, 그들에게 기대하는 역할은 분명하다. 갈등의 조정과 양당 대결정치, 그리고 진영논리를 조율하고 중재하는 한편 때로는 무력화해서 정치 본연의 기능을 회복하라는 것인데, 제3세력을 자처하는 개혁신당은 내부 갈등조차 조정하지 못했다.

계파갈등이라는 구태를 똑같이 답습했다. 안타까울 따름이다. 자신들 정체성에 대한 충분한 조율 없이 급하게 통합을 선언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런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고 할 수 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이전투구와 적대, 증오정치는 유권자들의 정치혐오를 부추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정당이 없는 무당층이 20% 이상 나타나는 이유다.

3지대 정당만 잘하면 중도층에 대한 소구력이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개혁신당의 파탄으로 이낙연‧이준석 대표의 정치적 리더십은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이준석 대표의 리더십은 분열과 독선의 이미지가 짙어졌다고 본다. 이낙연 대표도 정치적 위상이 더 쪼그라든 측면이 있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초심으로 돌아가겠다”고 했지만 앞으로 새로운 정치에 대한 정책 비전과 청사진을 제시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설 자리는 없을 것으로 본다.

정치 이념과 정책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투기하듯 뭉쳤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개혁’을 내걸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국민을 우롱한 것은 아닌가? 개혁신당의 패착은 이합집산을 통한 세력화가 제3지대의 성공조건이라고 착각한 데 있었다.

유권자의 판단기준은 얼마나 많이 모였느냐가 아니라 그들이 무얼 말하느냐다. 양당정치의 폐단을 넘어서려면 양당과 다른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꺼내놓을 수 있는 실력부터 갖춰야 할 것이다.

양당의 독점구도 극복은 개혁신당의 존립기반도 된다. 선거제도와 정당개혁, 선거구 획정과 관련한 설득력 있는 개선 방안을 내놓고 유권자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대선과 총선의 결선투표제 도입, 영호남의 정치양극화를 극복할 실효성 있는 대안 등을 제시해 보기 바란다, 그것만이 그들이 살길이다.

류근찬

통일이답이다국민운동본부 상임고문

제 17대, 18대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