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을 둘러싼 정부와 전공의들의 대치가 주말을 고비로 중대 분수령을 맞고 있다.

진료를 거부한 채 집단행동 중인 전공의들은 정부가 체벌면제를 약속한 시한(2월 29일)이 지났는데도 대부분 복귀하지 않았다.

의대 정원 논란이 길어지고 있다. 정부는 당장 2,000 명씩 늘리자고 하고, 의사협회는 이에 반대하며, 전공의의 파업도 멈추지 않는 분위기이다.

강대강 대치가 길어지면 제일 큰 피해자는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환자들이다. 25년 전 의약분업제도 도입을 둘러싼 의사 파업사태는 의사였던 누군가가 경제학자가 되기로 결심한 중요한 계기였다고 한다. 이건 실화다.

의학은 자연 과학이지만, 의료는 경제학의 도움이 크게 필요한 분야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사람의 변이다.

국민건강과 경제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판단한 혜안이 필요하다.

정부에 따르면 전국 주요 수련병원에 복귀한 전공의는 565명에 그쳤다고 한다. 근무지를 이탈한 전공의(9076명)의 10분의 1도 안 된다. 이에 정부는 3월 1일 전공의들에 대한 업무 개시 명령을 인터넷에 공시 송달했다. 자택 등에 명령서를 전달한 데 이어 송달 효력을 확실히 하기 위한 것이다.

4일부터 미복귀자에 대해 3개월 면허정지 처분과 사법절차에 들어가겠다고 경고했는데 실제 이행하겠다는 단호한 의지가 엿보인다.

경찰도 이날 의료법 위반으로 고발당한 대한의사협회를 상대로 강제수사에 착수했다.

의사들이 의료현장을 떠나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다.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것이 직업인 그들이 응급상황에 따라서는 살인과 다름없는 행위를 하기 때문이다.

의협과 정부가 이렇게 맞서는 사이 환자들의 고통은 커지고 있다.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이미 80대 환자가 응급실 7군데를 돌아다니다 사망했고, 수술을 거부당한 임신부가 유산했다고 한다.

이번 주 들어 주요 대학병원들이 수술을 절반 이상 줄이는 바람에 환자들이 애를 태우고 있다. 오죽하면 환자단체들이 “중증 환자에게 치료 연기는 사형선고다”, “국민 목숨을 담보로 겁박하면 시정잡배와 뭐가 다르냐”라고 반발하겠는가.

전공의들은 정부를 이기겠다고 버티기만 할 게 아니라 환자를 살리겠다는 생각을 먼저 해야 한다.

“의사는 국민 눈높이에서 사회적 책무를 수행해야 한다”라는 서울대 의대 김정은 학장의 졸업식 축사가 화제다.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의료대란을 초래할 만큼 집단 이기주의가 팽배한 의료계에서 뜻밖에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는 것이 반갑다.

김 학장은 얼마 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식에서 “지금 의료계는 국민에게 따가운 질책을 받고 있다”며 “의사가 사회적으로 숭고한 직업이 되려면 경제적 수준이 높은 직업이 아닌, 사회적 책무를 수행하는 직업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여러분들은 많은 혜택을 받고 이 자리에 서 있다”며 “받은 혜택을 사회에 돌려줘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진 의사, 사회적 책무성을 위해 희생하는 의사가 될 때 국민 신뢰 속에 우리나라의 미래 의료, 의학계를 이끌어 갈 수 있다“라고 조언했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의료계는 김 학장의 이 충고를 깊이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김 학장의 당부와 달리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의사들이 집단행동을 멈추고 서둘러 의료현장으로 복귀했으면 한다.

류근찬

통일이답이다국민운동본부 상임고문

제 17대, 18대 국회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