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당국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1일 신년사에서 평창 올림픽에 대표단을 파견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것을 시작으로 판문점 고위급 남북당국회담 개최가 확정되기까지 5일이면 충분했다. 정부는 사전 교감이 없었다고 밝혔지만, 톱니바퀴 돌아가듯 제안과 호응을 주고받으며 국면전환의 급물살을 탔다.
지난 1일 김정은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이례적으로 구체적인 대남(對南) 메시지를 냈다. 지난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 시험발사 성공을 기점으로 '핵 완성'을 선언한 점에 비춰 전향적인 대외 메시지가 나올 가능성을 점쳐지긴 했으나, 그의 신년사는 예상 범위를 넘어섰다.
김정은 위원장은 평창에 대표단을 파견할 용의가 있다고 밝히는 것뿐만 아니라 남측 당국과 시급히 만날 의향까지 표명하면서 남측 정부의 즉각적인 반응을 요구했다. 더불어 북한이 지난 2002년 월드컵이 남측에서 개최됐다는 사실을 숨기는 등 남측 관련 정보를 철저히 차단해온 점에 비춰볼 때 '남조선 올림픽'을 언급했다는 것도 파격적인 자세라는 분석이 나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곧바로 반응했다. 문 대통령은 신년사 발표 당일 오후 청와대 대변인을 통해 '환영' 입장을 낸 데 이어 다음날 국무회의에서는 관계부처 장관에게 실무적인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그 결과로 같은 날 오후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긴급브리핑을 열어 "9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고위급 당국회담을 열자"고 공개 제의했다. 조 장관은 공개 제의와 관련한 사전 물밑 교감은 없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다음날인 3일에는 북한이 호응해왔다. 김정은 위원장은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위원장에게 발표 권한을 위임하는 방식으로 남측의 '환영' 입장에 대한 '환영' 의사를 표하며 남북 간 직통 연락채널을 개통하겠다고 밝혔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러한 결정에는 문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이 결정적이었음을 강조했다.

북한은 5일 오전 10시16분께 전통문을 통해 "남북 고위급회담을 위해 1월9일 판문점 평화의집으로 나갈 것"이라고 수락 의사를 밝혀왔다. 우리 정부가 사전 교감 없이 밝힌 고위급회담 제의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북한은 이날 통지문을 리선권 조평통 위원장 명의로 보냈으며, 수신인은 조 장관으로 표기했다. 오는 9일 고위급회담을 장관급 회담으로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간접적으로 밝힌 거라는 분석이다.
남북당국은 오는 9일 회담 개최 전까지 문서교환 방식으로 회담 관련한 실무적인 문제를 협의하기로 했다. 북측이 남측의 회담 제의를 전향적으로 받아들인 만큼 대표단 격(格) 등의 문제에서는 접점을 찾기가 어렵지 않을 거라는 전망이다. 다만 의제 부분에서는 북한이 남북관계 개선 문제도 논의하겠다는 방침이어서 세부적인 사안에 관한 이견 조율에 시간이 필요할 거라는 관측도 나온다.